뉴스 스페셜 5・18 뉴스

총상 환자를 치료하다

송정근 기자 입력 2019-05-14 21:00:04 수정 2019-05-14 21:00:04 조회수 10

(앵커)
5.18 당시 광주의 의료진들은
총상 환자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총상을 치료한 경험이 없는데다
우리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5.18 기획 연속 보도,
오늘은 송정근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80년 5월 당시 26살이었던 김태수 씨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광주역 근처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허벅지 부상을 입었습니다.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 돼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총상 후유증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인터뷰)김태수/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회장
"그때 많이 맞았던 게 총상도 총상이지만 많이 맞다 보니까 지금에 와서는 앉아 있기도 힘들정도고 걸음도 많이 걷지도 못하고.."

김씨 같은 총상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치료했던 의료진들의 심정도
비참했습니다.

난생 처음 총상 환자를 본데다
부상의 정도가 다른 외상환자하고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뇌 조직이 흘러나오거나
다리의 피부가 아슬 아슬하게 붙어 있는 등
총상 환자들의 부상 정도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인터뷰)김신곤/전남대학교 명예교수
(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조교수)
"(총알이) 들어가는 입구 있고 나오는 데 있고 그러니까 그 총상의 방향을 봐서 아 총알이 어디를 관통했겠구나 그것이 폐를 관통했겠다 내장을 관통했겠다 우리가 추측을 하는 거죠. 환자 증상하고..."

의료진들에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당시 춘태여상을 다니던 박금희 열사의
죽음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시민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나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얼굴에 총을 맞아 싸늘한 주검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안성례/오월어머니집 전 관장
(당시 기독병원 간호 감독)
"내가 정말 헌혈이라도 하고 내가 공부를 해야지 그러면서 와서 그렇게 낭랑한 음성으로 헌혈을 하고 갔는데 그 애가 불과 한 시간 남짓 됐을까 하여튼 금희가 죽어가지고 온다고.."

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진 뒤
밀려드는 총상 환자들로 응급실은
비어 있을 틈이 없었고,
병원 복도에서도 응급 수술이 진행됐습니다.

의료기기들을 제대로 소독할 시간도
없을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서순팔/전남대학교 명예교수
(당시 전남대병원 임상병리과 레지던트)
"정상적으로 소독을 하고 FM대로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거 비상사태죠. 그냥 손만 깨끗하게 씻고 일단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생기면 그때 치료하자 일단 생명을 먼저 구하자.."

의료진을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건
쉴새없이 밀려드는 총상환자도,
끔찍한 상처도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총을 쏜 사람이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인터뷰)조상기/기독병원 순환기내과 부장
(당시 기독병원 레지던트 1년차)
"처음에는 저희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어요. 군인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군인들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인데 무슨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냐. 처음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했고..그랬는데 자기 친척들이 당한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동안
계엄군의 총을 맞아 숨진 시민만
124명입니다.

그리고 총검과 곤봉 등에 38명이 숨지고
3천명이 넘게 다쳤습니다.

(스탠드업)
5월 18일부터 10일 간 전쟁터로 변한
광주의 모든 병원엔
총상 환자들이 밀려들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의료진들은
오월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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