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 당시 의료진들은
총칼에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계엄군의 수색을 피하도록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군인 신분이었던
국국통합병원의 일부 의료진들도
시민들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보도에 우종훈 기자입니다.
(기자)
국군통합병원은 광주항쟁 기간동안
전남대병원, 기독병원과 더불어
중요한 의료기관이었습니다.
비록 군인들을 치료하는 곳이이었지만
통합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다친 사람이
누구건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살폈습니다.
같은 군인이라도 계엄군들은
광주시민들을 때리고 자국민에게 총을 겨눴지만 병원의 군의관들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소위 폭도들을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이들 통합병원의 의료진들은 진급누락과 같은
불이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김연균/(당시 국군통합병원장)
"자기(계엄군)들 보기는 폭도들을 치료했다 이렇게 봅니다, 내가 말하자면. 나는 순수한 민간인이고 광주 시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정호용 특전사 애들 생각으로는 폭도들로 생각하겠지요.
병실에 누워있는 부상자들 가운데 주동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계엄군들은 병원들을 집중 수색했습니다.
총칼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쳐도
도망갈 수 없는 처지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의료진들은 구세주와도 같았습니다.
잡혀갈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경우
계엄군 눈에 띄지 않게
병원 구석구석에 숨겨줬고
병원에 일을 보러 온 젊은이들에게는
환자복을 입혀 잡혀가지 않게
군인들의 눈을 속였습니다.
(인터뷰)심재연/(당시 전남대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병동에 있는 간호사들이 보호자들 중에 좀 젊은 보호자가 있으면 환자복을 급하게 입혀가지고 침대에 눕히기도 하고 간호사들 옷장에 좀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중상자들이 워낙 많이 밀려들다보니 잠을 자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환자를 돌보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
정신없이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김신곤 교수는 수술실에 총탄이 날아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김신곤/전남대학교 명예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조교수)
"수술에 열중하느라고 그냥 뭔가 쏘는가 보다 그러지. 그것 가지고 (수술을 멈추진 않았죠.) 모든 것을 환자 수술에 집중해버리니까."
의료진은
80년 오월의 잔혹한 계엄군 행태를 목격했다면
누구든 시민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터뷰)김영진/화순전남대병원 외과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레지던트)
"'아 저건(계엄군) 적이다. 우리하고는 적이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더 강했다고 봐요."
(스탠드업)
"자신들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총칼에 스러졌던 80년 오월의 광주 시민들. 이들의 아픔 곁에는 '인간의 생명이 어떻게 이렇게 찢길 수 있느냐'며 눈물 흘린 의료진의 헌신도 있었습니다.
MBC뉴스 우종훈입니다."
◀ANC▶
◀END▶
5.18 당시 의료진들은
총칼에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계엄군의 수색을 피하도록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군인 신분이었던
국국통합병원의 일부 의료진들도
시민들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보도에 우종훈 기자입니다.
(기자)
국군통합병원은 광주항쟁 기간동안
전남대병원, 기독병원과 더불어
중요한 의료기관이었습니다.
비록 군인들을 치료하는 곳이이었지만
통합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다친 사람이
누구건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살폈습니다.
같은 군인이라도 계엄군들은
광주시민들을 때리고 자국민에게 총을 겨눴지만 병원의 군의관들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소위 폭도들을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이들 통합병원의 의료진들은 진급누락과 같은
불이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김연균/(당시 국군통합병원장)
"자기(계엄군)들 보기는 폭도들을 치료했다 이렇게 봅니다, 내가 말하자면. 나는 순수한 민간인이고 광주 시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정호용 특전사 애들 생각으로는 폭도들로 생각하겠지요.
병실에 누워있는 부상자들 가운데 주동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계엄군들은 병원들을 집중 수색했습니다.
총칼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쳐도
도망갈 수 없는 처지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의료진들은 구세주와도 같았습니다.
잡혀갈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경우
계엄군 눈에 띄지 않게
병원 구석구석에 숨겨줬고
병원에 일을 보러 온 젊은이들에게는
환자복을 입혀 잡혀가지 않게
군인들의 눈을 속였습니다.
(인터뷰)심재연/(당시 전남대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병동에 있는 간호사들이 보호자들 중에 좀 젊은 보호자가 있으면 환자복을 급하게 입혀가지고 침대에 눕히기도 하고 간호사들 옷장에 좀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중상자들이 워낙 많이 밀려들다보니 잠을 자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환자를 돌보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
정신없이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김신곤 교수는 수술실에 총탄이 날아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김신곤/전남대학교 명예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조교수)
"수술에 열중하느라고 그냥 뭔가 쏘는가 보다 그러지. 그것 가지고 (수술을 멈추진 않았죠.) 모든 것을 환자 수술에 집중해버리니까."
의료진은
80년 오월의 잔혹한 계엄군 행태를 목격했다면
누구든 시민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터뷰)김영진/화순전남대병원 외과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레지던트)
"'아 저건(계엄군) 적이다. 우리하고는 적이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더 강했다고 봐요."
(스탠드업)
"자신들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총칼에 스러졌던 80년 오월의 광주 시민들. 이들의 아픔 곁에는 '인간의 생명이 어떻게 이렇게 찢길 수 있느냐'며 눈물 흘린 의료진의 헌신도 있었습니다.
MBC뉴스 우종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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