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페셜 5・18 뉴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월을 말하다

남궁욱 기자 입력 2019-05-18 20:30:03 수정 2019-05-18 20:30:03 조회수 1

(앵커)
5월 항쟁 기간에 보여준
의료진들의 헌신을
조명하는 기획보도,
오늘이 마지막 순서입니다.

죽을 고비에서 만난
당시의 시민군과 의료진은
39 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궁 욱 기자입니다.
(기자)

5.18 첫 총상 피해자인 김영찬 씨.

당시 조대부고 3학년이던 김 씨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3시쯤 계림동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았습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장갑차의 움직임을 저지하려던 김 씨는 계엄군이 쏜 총의 유탄에 복부를 맞아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인터뷰)김영찬/5.18 첫 총상 부상자(당시 조대부고 3학년)
"바닥에 아스팔트에 불이 타타타타 튀는걸 내가 봤거든요. 이렇게 가다가 돌아보니까 바닥에 튀고 튀어온 총알이 배에 맞은거죠"

김 씨가 의식을 차린 것은 사흘 뒤인 21일.

전남대병원 의료진들은 김 씨의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고, 파열된 장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전남대병원 레지던트였던 김영진 의사와 의료진들은 김씨를 살리기 위해 7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인터뷰)김영진/전남대학교병원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전공의)
"출혈도 많았고 장이 총알을 맞아서 소장하고 대장하고 천공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막염이 되어서 오염도 되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환자와 의사로 만났던 이들이 39년만에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환자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20대 젊은 의사는 흰머리 교수가 되었습니다.

39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인터뷰)김영진/전남대학교병원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전공의)
"조금 걱정은 되는데 (무서워서) 병원을 못 가신다니까 조금 걱정은 되는데 그런것(부상 후유증)들을 다 잘 극복한 것 같아서 저는 엄청 기분이 좋아요"

(인터뷰)김영찬/5.18 첫 총상 부상자(당시 조대부고 3학년)
"(앞으로 자주)찾아뵙고 싶네요. 그리고 죽을때까지 제 생명의 은인으로 항상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18 당시 환자와 의료진으로 만났다 시간이 흘러 민주화유공자와 생명의 은인으로 다시 만난 이들은 또 있습니다.

5.18 피해자인 이민오 씨와 김태수 씨는 5.18 당시 국군통합병원장이었던 김연균 원장과 작년부터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김태수/버스에서 무릎 총상
"항상 제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이죠. 작년에 저희들 몇몇 분 통합병원에 같이 계셨던(진료 받았던) 분들하고(의료진들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전남대병원과 국군통합병원, 기독병원 등에 보관된 진료 기록과 당시 근무했던 수많은 의료진들의 증언은 그 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5.18 당시 의료진들의 헌신을 담은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예정입니다.

(스탠드업)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의료진과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이들의 인연은 오월 광주의 역사이자 현재입니다.

MBC뉴스 남궁 욱입니다.


◀ANC▶
◀VCR▶
◀END▶

Copyright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