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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오일팔6 - 김이수의 오일팔

김철원 기자 입력 2020-03-20 20:20:00 수정 2020-03-20 20:20:00 조회수 11

(앵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것은 사법부 최고 위치에 있는
헌법재판소장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내인생의 오일팔' 오늘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내려주는 헌법재판소의 수장이었던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의 별명은 '미스터 소수의견'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은 민감한 사회현안에서 헌법재판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진보적인 법적 해석을 보여줘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아주 오랜 난제를 양심의 자유, 소수자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방안을 고민 고민을 하면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전북 고창이 고향이고 광주 전남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전 소장은 5.18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직후 군에 입대해 31사단에서 군검찰관으로 광주시민들의 사체 검시를 담당한 겁니다.

계엄군의 총에 맞거나 대검에 희생된 광주시민들 중에는 항쟁지도부 대변인 윤상원 열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5.18 당시 군 검찰관으로 사체 검시)
"(윤상원의 시신을 보니) 총에 맞은 것 같기도 한데 이 사입구(총알이 들어간 입구)가 없는 겁니다. 뒤쪽에서 맞아서 앞으로 나왔는데 이게. 그래서 이게 총이 아니라 무슨 무엇에 크게 찔린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고..."

그동안 간직해왔던 검시 기록 비망록을 40년만에 처음으로 취재진에게 공개한 김 전 소장.

5.18을 '광주항쟁'이라고 표현하며 당시의 경험이 이후 판사생활과 소신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인터뷰)김이수 전 헌법재소장 (현재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국민을, 국민의 군대가 이렇게 살상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것에 대한 분노를 제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거고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어떤 판사로서 그런 역할을 좀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들을 마음 속 깊이 가지고 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소신있고 진보적인 판결의 대표적 법조인이지만
5.18 직후 군 판사 시절 광주시민들에게 내렸던 유죄판결이 아직도 가슴속 멍에로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에 의한 특별재심사유로 인정이 돼 가지고 다 무죄를 선고 받았거든요. 특별 재심에서. ㄱ 때 광주에서 제가 재판했던 분들도. 왜 나는 그 당시에 그런 재판을 못했었는가. 지금 같으면 그런 재판을 했을 텐데 (후회가 듭니다.)"

소수자 차별과 혐오, 배제가 난무하는 지금 한국사회에 화합과 대동의 광주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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