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단지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살이를 한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출소한 뒤에는 정신질환에 시달렸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조명합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5.18 2주기를 앞두고 있던 1982년 5월 12일.
서울대생 4명이 학교 근처 자취방에 모여 '광주 민중봉기 2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쓰는 등 5.18을 알리는 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탠드업)
이들 대학생들은 계획했던 5.18 2주기 추모집회를 실행에 옮긴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 경찰에 구속됐고 이후 집시법 위반 혐의로 모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들에게는 모두 징역 1년씩이 선고됐습니다.
(인터뷰)안재훈/(당시 서울대 철학과 4학년)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무죄죠. 예비음모라는 죄 자체도 없고요. 집시법에요. 당시 재판이라고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대로 판결을 내린 것이었고."
단지 시위를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 1년씩 옥고를 치르고 나온 이들의 삶은 처참히 망가졌습니다.
체포된 4명 가운데 3명에게서 정신병이 발병한 것입니다.
사회학과 학생이었던 김학묵씨는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 결국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됐습니다.
<故 김학묵 약력>
(인터뷰)김준묵/故 김학묵씨 형님
"본인(동생 김학묵씨)은 굉장히 책임감이 강했어요. 리더십도 있었고 그래서 가족들은 정신적으로 여러가지 과정을 잘 극복하고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차호정씨도 환청과 환영,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차씨는 지난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던 도중 자신을 고문한 수사기관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심에 괴로워하다 결국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故 차호정 약력>
(인터뷰)안재훈/故 김학묵, 차호정씨 동료, 생존자
"고통과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육체적 고통은 아마 차호정씨가 제일 많이 당했을 겁니다. 그 이후 또 '제헌의회 사건' 잡혀들어갔을 때 몇몇 중요한 조직사건 중 하나였고 뭐 들어가면 무자비한 고문이 일상화돼 있었기 때문에..."
수사과정 혹은 수감생활 때 받은 고문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죽은 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험난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1년 전 서울대에서 있었던 5.18 1주기 침묵시위에서 故 김태훈씨의 투신을 목격하고 나서였습니다.
(인터뷰)한홍구/성공회대 교수
"감옥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지고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하다가 그 생각의 어느 지점에서 광주를 생각하면 더이상 작동이 안되는 거예요. '에이 죽은 사람도 있는데' 계산을 못하는 사람들, 그게 '광주의 자식들' 특징이예요. 그런 바보들이 많았습니다."
일부 유족들은 5.18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지금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며 가족들의 삶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주와 광주시민들을 생각하며 죽어갔지만 광주와 광주시민들은 오늘날 그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故 김학묵 씨
-1959년 서울 출생
-1978년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
-1982년 5.18시위 예비사건 체포 구속
-1983년 출소, 고문후유증 호소
-1985년 3월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
-故 차호정 씨
- 1960년 충남 천안 출생
- 1979년 서울대 인문계열 입학
- 1982년 5.18 시위 예비사건 체포 구속
- 1986년 제헌의회 사건 구속
- 1994년 사법시험 합격
- 1996년 고문후유증 시달리다 자택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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