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해있던 33년 전 오늘 이 시각, 도청엔 죽음을 뛰어넘은 숙연함과 광주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가득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아까운 목숨 살려보겠다고 광주의 어른들이 탱크 앞에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시민들은 매일 궐기대회를 열어 광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불안감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문이 돌았고 도청 앞 광장의 술렁임도 커져만 갔습니다.
도청에서 계엄군을 몰아낸 지 엿새째인 새벽 5시.(1980.5.26.월요일, 맑음. 낮최고기온 19.1도)
화정동에 계엄군의 탱크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접수돼 도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드디어 진압이 시작된 것일까.
불안해하는 시민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항쟁지도부를 진정시키며 홍남순 변호사 등 광주의 어른들이 일어섰습니다.
탱크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진압을 막겠다며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김성용 신부/'죽음의 행진' 대변인(화면 속 당사자)
"어른들이 총 맞으러 갈테니까 그 놈들이 쏘면 할 수 없지. 죽지 먼저. 우리가 먼저 죽을거야. 너희들은 여기서 끝까지 사수해라. 만약에 우리를 죽이고 여기에 오면 너희들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라. 광주의 자존심을 지키고 싸워라."
계엄군은 일단 탱크의 머리를 돌려 돌아갔지만시민들 사이의 동요는 더 커졌습니다.
항쟁지도부는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외신 기자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외신으로나마 기록을 남겨야 했습니다
윤상원 대변인이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인터뷰)인요한/연세의료원 국제진료소장(당시 윤상원 대변인 통역)
"북을 향하고 있는 총이 왜 남을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어렵다.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고 물도 바닥나고 있고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우리 매일 반공 구호를 외치고 시작한다. 그렇게 몰고 가지 마라. 억울하다"
오후 들어 도청 앞 광장 상공에서는 헬기가 소탕작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단을 뿌렸습니다.
(녹취)계엄군 선무방송/
"시민은 문을 열지 마십시오. 시민은 폭도를 숨겨주지 마십시오. 시민은 군 작전에 협조해 주십시오."
항쟁 지도부는 학생과 여성, 노약자들을 도청 밖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갔다 다시 도청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구선악/故 이정연씨(5.27 진압작전 때 사망) 어머니
"엄마 아버지 앉아보세요. 내가 할 말 있대요. 무슨 할 말이 있냐. 지금 나가면 안된다. 지금 나가면 죽는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 잡초를 누가 뽑을 것이요. 그러면서 우리가 피를 하나라도 흘림으로써 그 잡초를 뽑을 것이요. 그리고 콜라 한 병 마시고 그리고 나간 뒤로..."
윤상원 대변인은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중재를 요청했지만 글라이스틴 대사는 중재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계엄군은 자정을 기해 시내전화를 모두 끊었습니다.
시민군은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도청 안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부모 형제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들은 발길을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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