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 민주묘역을 찾은 전국 각지의 시민들과
여야 정치인들을 보면
5.18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자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특히 5.18 가짜뉴스가 큰 걸림돌이었는데,
1980년 당시의 왜곡 보도들이
가짜뉴스의 근원으로 꼽힙니다.
5.18과 언론을 다룬 기획보도
[미완의 오월 수첩] 두 번째 순서,
이다현 기자입니다.
(기자)
1980년 5월 22일 동아일보 1면입니다.
'광주 데모 사태 닷새째.'
'광주 시민들의 시가지 데모는
날이 갈수록 격화돼
닷새째 유혈사태를 빚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25일 조선일보는
5.18 민주화운동을 '무정부 상태',
시민군을 '난동자'라고 보도합니다.
1980년 당시 언론은 5.18을
시민들이 일으킨 폭동처럼 묘사했습니다.
신군부의 보도 전략에 따른 겁니다.
* 유숙열 /5.18 당시 합동통신 기자
"(신군부가) 광주항쟁은 그 폭도들에 의한 지역 분쟁의 하나다,
이렇게 과소평가하고 싶었겠죠."
신군부 총칼에
시민들이 수없이 죽고 다치고 있는데도
그 사실 자체가 덮이거나
피해자 수가 터무니없이 축소됐습니다.
* 김연두 / 5.18 당시 전남매일 기자
"물론 기자들이 힘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용기를 내고 써봐야 보도 검열에 걸리니까."
당시 현실은 보도되는 내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 이문석 /5.18 당시 광주MBC 라디오 피디
"공수부대들이 와서 무조건 차에서 학생 비슷한 애들만 보이면 내려서
곤봉을 무차별로 두들기는 거라 막 머리가 터지고. 이런 걸 내가 이제 직접 목격한 거니까."
* 조광흠/ 5.18 당시 조선일보 광주 주재 기자
"약탈 사건 같은 거라든가 폭행 이런 것도 없이 시민들이 질서를 잘 유지해 줬다는 게 그게 좋고."
결국 시민들의 분노는
뻔히 보이는 사실조차
말과 글로 알리지 못하는 언론을 향했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언론 때문에 오해까지 떠안게 됐다는
원망이 파다했습니다.
* 나경택 / 5.18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
"공수부대나 경찰도 무서웠지만 시민이나 학생도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건물에서 숨어서 취재를 했는데. 신문에 한 줄도 못 쓴 것 보고
시민들이 더욱더 기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그랬거든요."
왜곡 보도의 여파는 수십년 이어졌습니다.
항쟁이냐 사태냐,
시민군이냐 북한군이냐를 두고
논쟁과 갈등이 반복됐습니다.
* 김종일 /5.18 당시 전일방송 기자
"웃음밖에 안 나오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5.18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사실.
비상식을 상식화해가지고 뭐 그게 마치 상식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5.18 민주화운동은
언론이 정치 권력에 휘둘리면
반드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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