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뉴스

오월 기자들의 소망

이다현 기자 입력 2022-05-21 20:37:55 수정 2022-05-21 20:37:55 조회수 12

(앵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언론이 무력화됐던 데서도

찾을 수 있는데요.



아쉬움이 큰 만큼 되짚어봐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미완의 오월수첩> 끝 순서,

이다현 기자입니다.


(기자)
옛 전남도청 앞에

1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모였습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집단발포가 시작됩니다.



최소 30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총상을 입습니다.



5월 21일 집단발포는

5.18 민주화운동 중 벌어진 사건 중에서도

최대 비극으로 꼽힙니다.



*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기자

"1시쯤에 통신병이 "발포 명령 떨어졌습니다."
차 대위한테 보고를 하니까, 차 대위가 그대로 발포해 가지고."



42년이 흘렀습니다.



누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했는지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0년 당시 묻혔던 사실관계들 중 일부는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신군부 핵심 인물이었던 전두환은

지난해 사망했습니다.



당시 언론이 사실상 무력화됐던 여파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 고승우 /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기들의 정당성,
그 다음에 자기 존재를 부각시켜서 정권 찬탈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었죠."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항의하며

검열 거부에 나섰던 기자들은 당시 언론투쟁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일부였음을 강조했습니다. 



광주 참상을 목격한 언론인들은

더 늦기 전에 5.18의 책임과 피해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 노병유 / 당시 광주 CBS 기자

"실제 나는 이 현장에 있었고, 봤고, 지금도 여기에 광주에 살고 있다. "



* 김종일 /당시 전일방송 기자

"지금까지 많이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 할 겁니다."



언론 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경험.



언론이 정치는 물론 자본 등 어떤 권력에도

다시는 휘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 노향기 / 전 기자협회장, '기자의 혼' 상 수상자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 그런 것은 당연한 거야, 어찌 보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이제 이 사회가 변했다고 하지만."



이전 독재 시절에 비해 언론 자유가 늘었지만

그만큼 기자 정신이 발휘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회의는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 유숙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무엇이 오늘날 언론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기자들을 기레기로 몰아갔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불리는 데 대하여 언론인들 자신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 진솔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언론의 소명을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5.18 당시 무기력했던 언론의 모습은

앞으로도 기억해야 할 교훈을 남겼습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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