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광주비엔날레가 걸어 온
지난 30년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새로운 30년사를 쓰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걸음더] 집중취재 이어서
박수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하루 뒤
망월동 민주열사묘역에서는
광주 미술인들의 통일미술제가 열렸습니다.
관제 성격인 국제 행사에
광주 미술의 대표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일종의 안티 비엔날레였습니다.
이후 광주비엔날레와 민중미술계는
긴장과 협력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주 미술의 두 축으로 공존해왔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새로운 담론과 실험을
추구해야 한다는 비엔날레의 이상은
광주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상과 때때로 충돌했습니다.
지난해 박서보 예술상을 둘러싼 갈등과
지난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때 불거진
'세월오월' 전시 파문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 홍성담/'세월오월' 작가 (2014.8.25 기자회견)
"예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참여한 이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관심 표명도 없이 비엔날레와 시립미술관 점령에만
몰두하는 더러운 욕망의 배출을 잠시 멈추기를 부탁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라는
독점적 위상이 사라진 것도
광주비엔날레가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이후
우리나라에서만 30여개의 비엔날레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올해만 해도 광주비엔날레 개최 시기에
부산과 대전, 서울 등에서 너댓 개의
대형 미술 축제가 겹치기로 열립니다.
비엔날레 선도 도시로서
차별화된 정체성과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민주와 인권, 평화의 도시. 이런 것들이 미술에서도 다루는
화두이고 이슈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광주비엔날레에서
매회 연속해서 잘 담아내고 기본 맥락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습니다.)"
세계 5대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역 미술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도
광주비엔날레의 어두운 이면입니다.
그동안의 양적, 외형적 성장을
지역 미술계의 내실있는 발전으로 연결짓는 건
서른살을 맞은 광주비엔날레와
개최 도시 광주에 던져진 숙제입니다.
엠비씨뉴스 박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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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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