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더]

[한걸음더 취재후기] 재생에너지 규제하는 ‘계통 포화 해소 대책’ 그게 뭔데?

임지은 기자 입력 2024-09-19 15:17:35 수정 2024-09-19 16:59:40 조회수 548


  재생에너지의 신규 발전 허가를 제한하는 '계통 포화 해소 대책'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계통'과 '포화'는 무슨 뜻인지, 그리고 왜 이걸 해소해야 한다는 건지.. 많이들 생소하게 느끼실텐데요. 나주 에너지 공기업들을 출입하는 취재진도 이해하기 참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늘리라고 해서 늘렸는데..

【사진】 지난 8월 19일 / 태양광발전 광주 계통통제 저지 기자회견 / 광주에너지전환네트워크 등


  이번 취재는 시민단체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들여다 보던 중 시작됐습니다. 정부가 나서 새로운 전기 발전을 규제하는 '계통 포화 해소 대책'이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실상 말살시킬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 의문이 들었습니다.

'많고 많은 전기 중에서도 왜 재생에너지만 타겟이 되는 건가?'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압도적인 우리 지역이 직격탄을 맞게되는 건 아닌가?'


  취재진은 먼저 전기의 수송을 뜻하는 '계통'의 전 과정을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사진】 광주MBC 뉴스데스크 캡처

  원전, 화력발전소, 태양광 등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면, 송전탑, 송전망을 거쳐 전국 곳곳의 소비처로 보내집니다. 문제는, 소비보다 생산이 많아 송전망이 포화될 경우 생기는데요.

블랙아웃, 즉 정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큰 고심에 빠졌습니다. 전기가 이미 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많이 생산되는 호남을 주요 규제 지역으로 선택했습니다. 넘치는 전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송전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우선 생산을 규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겠다는 겁니다.

<산자부-취재진과의 통화 중 발췌>
"호남 지역에 신규로 발전 사업을 허가 받는 것이 주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늘어나는 재생에너지에 맞춰서) 전력망 건설이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시간과 민원이나 함께 겹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나.."


[광주MBC 뉴스데스크] "태양광 늘렸는데.." 재생에너지 신규 허가규제 왜?
https://kjmbc.co.kr/NewsArticle/1421021
 

【사진】 지난 8월 26일 / 더불어민주당 재생에너지 보급 중단 긴급 기자회견

  특히, 일조량이 많고 부지가 넓어 재생에너지 발전에 딱 적합한 전남의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국회, 시의회도 뒤늦게 반발에 나섰습니다.


원전을 살리자? 
  하지만 의문이 깔끔히 해소되진 않았습니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확장을 축소하고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늘리기 위함이 아닌지.. 민주당과 시민단체들도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현 정부는 체코를 상대로 거액의 원전 사업을 수주하고 한빛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해 주민 반발을 무릅쓰고 절차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전임 정부 시절 시행했던 탈원전 정책으로 백지화됐던 신한울 3·4호기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건설 작업이 시작되게 됐습니다. 결국 이번 정책이 '원전 살리기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진】 지난 7월 12일 / 한빛원전1*2호기 수명연장 공청회 무산 현장

  산자부 관계자는 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 힘 빼기용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산자부-취재진과의 통화 중 발췌> 
“대립적인 관점을 얘기하시는 분들이 그런 주장을 많이 하는데요. 그러면 재생에너지만 들어와야 하고 원전은 들어오지 말아야 하는 논리는 잘 모르겠는데요... 지역적 안정성을 충분히 높여놓고 크게 고민을 해야 될 것 같고요, 일정 정도 국민들의 전기요금이라든가 가격적인 수용성 문제를 고려해야 된다면 당연히 필요한 가동할 수 있는 원전 같은 경우는 계속 운전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면서도 전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만 있었을 뿐,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전력망 정책은 고민하지 않았다고 취재진에게 밝혔습니다.

<산자부-취재진과의 통화 중 발췌> 
“지난 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들은 많이 폈지만, 이런 보안장치나 전력망의 안정성을 같이 높이는 부분에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광주MBC 뉴스데스크]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 규제에 나선 이유는?
https://kjmbc.co.kr/NewsArticle/1421239
 

우리 지역 미래 사업에 먹구름 
  더 큰 문제는 지역 경제의 타격입니다. 실제로 전남은 발전 설비를 매년 1기가와트씩 늘려 국내 재생에너지의 20%를 차지할 만큼 재생에너지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진】 광주MBC 뉴스데스크 캡처

  오락가락 정책에 에너지 정책 기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긴 전남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전남도는 송전 시설을 지을 때 전남을 입지 선정에서 먼저 고려할 수 있게 법적 기반 마련을 촉구한다거나 데이터 센터를 유치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지방 정부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겁니다.

  나주 혁신산업 단지도 비상입니다. 산단에 들어선 기업들이 RE100을 목표로 했는데, 신규 발전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겁니다. 전남을 주 영업권으로 삼고 있었던 태양광 시공업체들도 차차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락가락 정책.. 유예기간도 끝났다

자료 제공】  전라남도


  결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규제 정책이 이번 달부터 시작됐습니다. 유예기간도 단 석 달만 준 채 말입니다. 태양광 사업자들도 발전 신청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521건에 그쳤던 사업 허가 신청 건수가 올해는 약 10배가 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월도 3배 가까이 늘었는데요, 또, 짧은 기간 안에 토지를 찾지 못해 계획이 무산된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6월에 건수가 줄어든 건, 정부가 발표한 시점인 5월 30일 직후였고, 계통 포화 해소 대책이 호남 지역의 재생에너지 신규 발전 규제로 이어질지 사업자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책은 시작됐지만, 송전 시설을 짓는 것만이 명쾌한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민 반발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야 합니다. 송전탑 건설 반대에 절정으로 치닫았던 밀양의 경우를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도 서울과 경기 동부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동서울 변전소 증설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주민 반대로 잇따라 전력망 구축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사진】 무안 변전소 설치 반대 기자회견 (목포MBC 뉴스데스크 캡처)

  대안은 있습니다. 송전 시설 건설만을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완책을 같이 세우자는 겁니다.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리는 데이터 센터를 지역에 적극적으로 유치하면,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전기를 소비하면 되니까, 굳이 전기를 멀리 보내야 할 송전망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또, 에너지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ESS’를 설치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버려지는 아까운 전기들을 저장해놨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기술은 에너지 시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사실,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규제하려고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화력이나 원전은 정부 관리로 발전량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변동성이 매우 큽니다. (태양광은 여름철 장마, 태풍 등의 날씨 영향을 많이 받겠죠.) 정부 입장에선 전기 공급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큰 변동 없이 일정하게 발전이 가능한 원자력으로 전기 공급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 산자부의 주장입니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송전 시설을 지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점도 정부에겐 큰 골칫거리일 겁니다. 주민 반발을 예상해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을 추진하려면, 일단 급한 대로 ‘재생에너지 생산 규제’라는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전력망 포화 문제는 단기간에 끝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겠죠. 정권 입맛에 따라 바뀌는 오락가락 정책이 아닌, 먼 미래를 예측한 장기적이고 일관적인 에너지 정책이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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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임지은 jieun@kjmbc.co.kr

광주MBC 취재기자
보도본부 뉴스팀 탐사*기획 담당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주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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