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광주시민들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계엄군의 등장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5·18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인데요.
당시 계엄군에 군홧발에 짓밟히고 탄압당했던
5·18 피해자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습니다.
임지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1980년 5월 27일, 광주 항쟁 마지막 날
아들을 잃은 이근례 씨.
44년이 지난 오늘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뒤척였습니다.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군사 독재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습니다.
* 이근례 / 5·18 피해자 故권호영 어머니
"워매. 나는 뭔 일이 날까봐 엊저녁에 잠 한숨도 안자고 그것 보면서,
워매 저러다 또 광주식으로 (계엄군이) 모두 우웅 하니 달려들면
어쩔까 그래가지고. 워메 떨려가지고 혼났어요, 내가."
그 날의 아픔을 또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울에 살고 있는 딸에게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며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 이근례 / 5·18 피해자 故권호영 어머니
"가슴이 폴짝폴짝폴짝폴짝 뛰고 침이 입에서 막 마르고
환장하겄드라고 그것을 봉께.. 오메, 저 사람들 어디로 좀 다 들어가불지 왜저럴까.
저라다 죽으믄 어짤라고. 그래서 전화로 (자식들에게) 밤나(밤낮)
'느그는 애기들 잡고 있어라잉.. 나가지 마라 잡고있어라잉"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붙잡혀
끔찍한 감옥 생활을 견뎌내야만 했던
김태찬 씨도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동료와 선후배가 피 흘려 이룬 민주주의가
한없이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 김태천 / 5.18 당시 피해자
"두 번 다시 생각하기가 싫은 거거든요.
탱크를 앞세워서 헬기를 앞세워서 거리에 뛰쳐 나온다는 것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 거든요.
그럼 제 2의 5·18이 된다는 것은 정말 두렵고 무서운 얘기죠."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만, 5.18 피해자들은
더 이상 물러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 김형미 / 오월어머니집 관장
"공수 부대원들 계엄군들을 보고 저희가 80년대 그 악몽이 되살아나서
너무너무 힘들고 아팠습니다. 저희 어머니들이 앞장서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투쟁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났던 5.18피해자들은
모두 어젯밤이 두렵고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계엄령이 해제되기까지 6시간 동안..
5.18 피해자들의 상처는
덧난 듯 아팠을 것 입니다.
오월을 다시 새기며,
민주주의를 성찰해 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MBC뉴스 임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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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취재기자
보도본부 뉴스팀 탐사*기획 담당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주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