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밤 중에 선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온 국민이 놀라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심정인 분들이 많았죠.
5.18 광주학살의 비극, 그리고 지금껏
진행돼온 5.18 진상규명의 노력들이
국민의 군대가 자국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어서 송정근 기자입니다.
(기자)
해방 이후 지금껏 계엄은 10여차례 선포됐고
이 중 가장 최근의 비상계엄은
45년전인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에
내려졌습니다.
대통령 피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내려진
비상계엄.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군사반란세력은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라는 군사쿠데타를
감행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장악에 성공한
전두환은 완전한 정권 장악을 위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라는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전국이 숨죽이고 있을 때 오직 광주시민들이
특별한 용기를 냈고 이는 5.18 광주 항쟁으로
발전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2000년 5.18 30주년 기념사)
"광주시민의 행동이야말로 인간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위대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간승리의 대서사시였던 것입니다."
이후로도 계엄령은 독재자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만지작거리는 카드였습니다.
전두환은 87년 6월 항쟁 때
계엄을 선포하려 했습니다.
시위 진압에 공수부대를 포함한
군부대 투입을 검토한 건데,
광주MBC가 입수한 육군 비밀 문건에는
발포 명령까지 언급돼 있었는데
시민들의 저항에 막혀 선포되지는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던
지난 2016년에도 계엄이 선포될 뻔 했습니다.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계엄령 시행 준비를 하는 문건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 임태훈/군인권센터소장(2019년 11월 광주MBC 시사본색 중)
"병력 이동도가 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톨게이트 내부 순환도로 그리고 성산대교부터 성수대교까지
10개 다리를 계엄군이 장악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8년만에 다시 준비된 비상계엄.
87년 6월 항쟁과 2016년 촛불항쟁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실제 선포로까지 이어졌지만
유혈 진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5.18 때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저항과
용기가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노영기/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한번 경험을 해본 것 때문에 국회의원들도 국회로 곧장 모였고
또 하나는 국민들도 그러한 국회를 지키기 위해서 국회 앞으로 나간 것이"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거나
총을 쏴 사살할 경우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군인들에게도 잘못된 명령은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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