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비상계엄은 지난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 일대에 내려졌습니다.
제주 4·3 출동을 거부한
국방경비대를 진압하기 위해 선포된 계엄령을
시작으로 무차별적인
민간인 희생이 이뤄졌는데요.
여순사건의 아픔이 아물지 않은
우리 지역에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 비상계엄이 엄중하고,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유민호 기자입니다.
(기자)
1948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두 달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여수와 순천 일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제주 4·3 토벌 작전
출동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한 국방경비대 14연대를
진압하기 위해섭니다.
호남계엄지구사령부는
지역 사법과 행정권을 장악했고
군법회의를 거쳐
민간인과 군인을 처형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계엄령은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을 촉발했습니다.
* 주철희 / 역사학자
"군법에 의해 회부돼서 사형되거나, 형무소에 수감됐는데,
여순항쟁에서 굉장히 많은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던
그 원초적인 것은 바로 계엄령이었습니다."
군법회의 기록된
희생자 수는 2천900명.
학계에서는
즉결 처형 등 기록되지 않은
희생자 수가 최대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계엄으로 시작된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은
지역 곳곳에 흔적을 새겼고
희생자·유족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이 우리 지역에
엄중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 서희종 /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 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도시에 다시
한 번 계엄령이라니 생각하니까. 정말 피가 거꾸로 솟구치더라고요."
여순사건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지역 사회에서는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죄와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 백인숙 / 여수시의회 의장
"우리 국민들에게, 특히 여수시민들에게 (비상계엄 사태가) 또 다른 감정이
있었을 건데요.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엄이 몰고 온
역사의 아픔은 그대로 남은 가운데,
여순사건을 겪은 지역민은
다시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MBC 뉴스 유민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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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일반사회 및 사건사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