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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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3.1운동 100주년, 교육현장 친일잔재 청산 촉구(김순흥 지부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20~08:57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박소희
■ 진행 황동현

◇ 황동현 진행자 (이하 황) - 기해년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3. 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가 됩니다. 그만큼 새해 화두로도 친일잠재청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요. 지역에서는 교육현장의 친일잠재청산부터 좀 먼저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광주제일고등학교의 교가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순흥 광주지부장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부장님.

◆ 김순흥 (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 황 - 광주제일고등학교 교가가 문제다라고 얘기를 하시는데 광주제일고등학교 하면 우리 지역에서 특히 이 독립운동과 관련된 굉장히 의미 있는 학교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 김 - 그렇죠. 한마디로 좋은 학교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학교입니다. 광주 학생 독립운동 올해 90주년이 되네요. 그때 당시이름으로는 광주고등고등학교 광주고고라고 했는데 해방 후에 광주서중학교가 되고 그것이 중고등학교가 분리되면서 광주서중과 광주제일고등학교, 우리가 광주일고로 줄여서 부르는데 이렇게 나눠지거든요. 우리 해방 전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했지만 해방 후에도 많은 인재를 키워낸 전국적으로 알려진 좋은 학교죠.

◇ 황 - 그렇게 특히 독립운동에 중심에 있었던 학교의 교가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 겁니까?

◆ 김 - 지금 친일잔재라고 말씀하셨었는데 광주일고 교가 같은 경우에는 엄밀하게 말하면 친일잔재라기보다는 친일부역을 했던 사람이 쓴 노래다 이렇게 쓰는 게 정확하겠죠. 해방 후에 일본군이나 일본 사람들은 물러갔지만 올해 벌써 74년이 되는데, 해방 후에. 그들이 남겨놓은 찌꺼기가 우리 사회 전반에 남아있습니다. 노래뿐만 아니라 문화랄지 말이랄지 행사. 며칠 전에 보니까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장례의식조차도 일본의 찌꺼기 잔재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사실 그런 게 확인이 되고 있고요. 그래서 해방 후에 반민 특위를 만들어 친일잔재를 청산하려했는데 국내기관이 정치기관이 약했던 이승만이 일본군 출신, 일본 경찰 이런 사람. 친일 세력들을 이용해서 정권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 친일청산이.

◇ 황 - 이루어지지 않았죠.

◆ 김 - 무산이 돼서 이루어지지 않았죠. 대부분 이런 일본군 출신 또는 일본 경찰 출신들이 6. 25나 한국전쟁이 반공세력으로 깃발을 들고 자신들의 친일, 과거를 신분 세탁을 합니다. 이후에 박정희나 박근혜 이런 친일 반민족 세력들의 뿌리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지배를 해 우리가 친일잔재청산 이런 생각들은 별로 관심도 많이 가지지 못했고 이루어 지지 않았고 특히 해방 후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을 친일 인사들이 주도해 왔습니다. 그들의 손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그들의 손으로 교육정책을 만들고 그랬었거든요. 문학이랄지 미술이랄주지 음악이랄지 문학 같은 경우에는 윤동주나 이육사 이렇게 뚜렷하게 항일을 저항을 하신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을 교과서에서 뺄 수는 없었지만 음악은 완전히 친일 음악인들 일색으로 그 사람들 노래 일색으로 물론 외국곡 몇 곡은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음악 교육을 좌지우지했고 최동선이랄지 정률성. 정률성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런 항일을 했던 음악가들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친일했던 것들이 그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교재. 이런 것들을 가지고 배우다 보니까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노래도 가사만 바꿔놓은 일본 노래입니다. 이런 노래 있잖아요. 일본 노래를 그대로 갖다가 한국말로 바꿔놨을 뿐이지 그 체계로 또는 율동도 그대로 해 왔고 그게 젖어서 우리들이 잘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 황 - 결국은 지부장님 말씀은 교육의 깊은 곳에 친일의 흔적이 그리고 있고 특히 광주제일고등학교. 이 독립운동에 어떻게 보면 호남, 독립운동의 중심이라는 광주제일고등학교 교가마저도 친일 작곡가가 작곡한 곡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 김 - 저도 66년에 중학교를 들어가서 92년에 졸업을 했지만 그 뒤로 한동안도 이흥렬이라는 사람이 친일 음악인인지도 몰랐고 그런 것을 친일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친일 인명사전이라는 것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들어내죠.

◇ 황 - 그때 아신 거군요.

◆ 김 - 네, 그때 4307명이라는 친일. 훨씬 더 많은데 고르고 고른게 430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올있는데. 정부에서 만든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도 1000명 가까이 올라있는데. 이흥렬이라는 사람도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는 41명의 음악인 중에 한 사람이죠.

◇ 황 - 어떤 일을 한 사람인가요. 이흥렬 작곡가는.

◆ 김 - 일제 때도 일본을 찬양한 노래랄지 이런 것도 많이 짓기도 하고 일본을 위주로 찬양하는 행사. 나치도 2차 대전 때 프랑스 점령하고 나서 항상 예술인들을 앞장 세워서 자기들의 전달했듯이 일제도 우리 문인들이랄지 음악인들 이 사람들을 앞장 세워서 민족말살을 하고 일본을 찬양하고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우리나라 사람,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또 무슨 징용해서 자원하도록 하게 해서 그 사람들이 앞장서는 연설도 하고 글도 쓰고 노래도 짓고 그랬었던 것이죠.

◇ 황 - 지금 지부장님 방금 이흥렬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 그런데 광주에 있는 다른 여러 학교들의 교가들도 친일 음악가들이 작곡한 곡들이 굉장히 많다면서요. 예를 좀 몇 개 들어주시겠습니까?

◆ 김 - 그걸 일일이 들지지 못하겠는데요. 지금 자료가 없네요. 그런데 최근에 생겨난 학교들은 별 문제가 없는데 해방 이전부터 생겨서 오래 된 학교들에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윤상이라는 분이 작사를 안 한 학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또 작곡은 여러 사람이 했어요. 그렇지만 그중에 대부분이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친일 작곡가들이었고.

◇ 황 - 우리들이 알고있는 많은 작곡가들 홍난파나 현재명이나 교과서에서 접했던 작곡가들이 거의 다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 김 - 대표적인 친일 행위자죠. 그보다 문제가 되는 게 안익태입니다. 우리가 애국가라고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안익태라는 사람이 쓴 곡인데. 이 사람은 이흥렬, 홍난파, 현재명보다 더 적극적으로 친일 앞장섰던 사람이거든요. 1942년에 만주국, 일본의 괴뢰국가죠. 20주년을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면서 일본 왕에게 바친 만주환상곡이라는 걸 작곡을 해요. 그런데 이것의 한 부분을 작곡해서 한국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데.

◇ 황 - 그게 현재 애국가 모태가 된 건가요?

◆ 김 - 그중에 들어있는 게 애국가입니다. 모태가 아니라 그 안에 부분이 있어요.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있지 않지만, 노래가. 그런데 해방후에 이것을 애국가라는 이름을 붙여서 살짝 내놓고 이게 우리가 부르는 국가로 정식 국가로 자리를 잡게 됐는데. 결국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가가 작사자도 반민족 행위자라는 설이 대표적이고 또 이 노래 자체가 일본 왕에게 바치는 노래에서부터 그 뿌리가 있다는 것은 참 수치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광주일보 교가도 문제지만 애국가도 바꿔야 되는 문제입니다.

◇ 황 - 근본적으로 저희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고쳐야 될 부분이 많다는 건데. 그중에 시작이 광주일고의 문제를 삼으셨고 애국가까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런 변화들. 그런데 오랫동안 이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고정됐기 때문에 한번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또 바꾸는 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분들도 일부 계시는데. 어떻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변화를 가져와야 된다고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도 해 주세요

◆ 김 - 이건 어느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 보다 시민들이 얘기를 해서 찬성과 반대를 내놓도록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도가 있었는지 모르는데 이런 걸 자꾸 이야기가 되면서 우리 주변에 일제잔재 찌꺼기가 더 발생될 수 있거든요. 이게 난항을 겪을수록 역설적으로 더 좋은 역사를 우리가 가질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바꿔야 죠. 잘못된 것들은.

◇ 황 - 궁극적으로 바꿔야 되고 이번에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과정의 하나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광주제일고등학교 교가가 친일 작곡가가 작곡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오늘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게 되는 거고 또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가는 혹시 친일잔재, 친일 작곡가가 작곡한 건 아닌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찾아보는 과정도 중요한 것 거 아니겠습니까?

◆ 김 - 그렇죠.

◇ 황 - 네,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친일문제 어떻게 청산되고 해결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지도 한말씀해 주시죠.

◆ 김 - 지난 100년은 우리가 나라를 찾는다고 정신없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으니까 양보하고 치더라도요. 앞으로 100년은 진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친일잔재 찌꺼기들을 우리 주변에서 말끔하게 찾아내고 청소해 내야 합니다. 광주에서는 친일잔재 전수조사라는 프로젝트, 광주시가 집행을 만들어서 계획을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형, 무형의 친일잔재들을 다 찾아내는 작업부터 해야 돼요. 많은 곳에 친일했던 사람들의 공덕비가 있고 그사람들을 기리는 문학 행사도 있고 비석도 있고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아무 의심없이 하고 있거든요. 심지어는 3. 1절, 광복절에 친일파들이 친일을 찬양했던 노래, 선구자랄지 희망의 나라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도 우리가 멋모르고 좋은 노래라고 알고 있었는데.

◇ 황 - 후손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 김 - 부끄러운 일이죠. 그래서 이걸 찾아서 정리해야 합니다.

◇ 황 - 앞으로 정말 할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중심에 또 민족문제연구소 역할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 - 고맙습니다.

◇ 황 - 지금까지 민족문제연구소 김순흥 광주지부장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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