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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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인터뷰]80년 5월 광주 참상을 해외에 알린 어느 시민의 영문 편지 최초 공개(최용주/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30~08:57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80년 5월. 신군부가 보낸 군인들에 의해서 봉쇄되어 있는 광주의 참상을 광주 밖으로 알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당시 광주의 현실을 해외로 알리기 위해 시민이 직접 손으로 쓴 영문편지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 편지는 미국과 일본, 스위스, 유럽 여러 국가로 전달이 됐고요. 일본 NHK는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고 합니다. 이 편지를 처음 찾아내서 공개한 최용주 5.18 기념재단의 비상임연구원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최용주 (이하 최) - 안녕하세요.
◇ 황 - 굉장히 중요한 하고 큰일을 해내셨는데요. 편지를 찾아내고 내용을 확인하셨을 때 그때의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 최 - 이 편지를 찾으려고 자료더미를 뒤진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편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저희가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지, 이 편지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었는데. 어느 도서관에서 찾다가 보니까 이 편지의 텔렉스 원본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기뻤죠.
◇ 황 - 기쁘고 특히 해외로 우리 그때 5.18 광주의 모습을 알리는 굉장히 소중한 자료 아니겠습니까?
◆ 최 - 그렇죠.
◇ 황 - 구체적으로 어디서 찾아내신 겁니까?
◆ 최 - 이게 미국에 있는 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찾아냈습니다.
◇ 황 - 현재 보관 상태는 어떻습니까?
◆ 최 - 아주 깨끗합니다. 이게 UCLA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일본운동에 관련된 자료 컬렉션이 있거든요. 그래서 보관상태가 아주 좋고요. 아주 굉장히 소중하게 UCLA 도서관에서 보관을 하고 있는 자료입니다.
◇ 황 - UCLA 도서관에서도 이 자료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얘기네요.
◆ 최 - 그렇죠.
◇ 황 - 이 편지, 찾기 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씀 하셨는데. 언젠가는 이 편지를 꼭 찾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물론 하셨겠습니다?
◆ 최 - 그렇죠. 이 편지가 처음 소개되고 일본의 잡지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전문이 실렸는데. 그 전문이 어떤 형태로 해외로 나가게 됐는지에 대한 단서를 저희들이 찾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텔렉스 원본을 찾은 거죠. ◇ 황 - 편지가 담고 있는 내용 소개 좀 해주세요.
◆ 최 - 이 편지는 당시 광주에 거주하는 어느 여성이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자신이 목격한 계엄군의 참상과 시민들의 의연한 대응, 질서 있는 행진. 이런 감동적인 모습을 아주 담담한 필체로 전하고 있습니다.
◇ 황 - 그 당시의 모습들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의 시선으로 그대로 담담하게 쓰고 있다는 이야기네요. 여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일부 언론에는 교사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좀 더 구체적인 그분의 그런 신상정보는 없으신가요?
◆ 최 - 이제 이 원문 자체에는 본인의 신상을 암시하는 몇 가지 단서를 남깁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실명의 인물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이 편지가 신뢰성을 갖는 거죠.
◇ 황 - 정당성이 생기니까.
◆ 최 - 그렇기는 하지만 이 편지가 주로 영어로 작성이 되었을 때에는 외국 특파원을 겨냥하고 쓴 겁니다. 그래서 이제 어차피 이 편지가 공개가 될 때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꼭 숨겨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그런 내용이 나오고 또 굉장히 엄혹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편지의 원본을 보니까 자신은 몇 년 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여성이고 광주 인근에서 교사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부친은 지방에 있는 대학교의 교수라고 이렇게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 황 -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면 내용이 좀 실려 있는데 찾으려는 노력도 좀 하셨을 것 같아요. 이분이 어떤 분인지?
◆ 최 - 제가 이런 몇 가지 단편적인 단서를 중심으로 해서 짚이는 인물이 있어서 몇 분하고 인터뷰를 해본 적은 있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하시니까. 아직까지 찾지는 못했고요. 또 언론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굉장히 숨은 의인이고 당시의 영웅이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서 좀 소개를 해 드리고 싶은데. 정말 언론에 많이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좀 나서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보게 됩니다.
◇ 황 -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또 인연이 되거나 당사자가 들으실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부분들, 서로 그 당시 상황을 좀 알고 어떤 분인지 서로 아는 부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그런 찾으려는 노력은 굉장히 필요할 것 같고요. 이 편지가 갖고 있는 어떤 역사적 의미, 어떻게 보십니까?
◆ 최 - 이게 이제 광주의 참상을 현지 주민이 영어로 최초로 해외에 알렸다고 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특파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했었고요. 또 당시에 광주가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실은 해외에서 우리 광주의 이런 참상과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해외에서 자꾸 후원한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이 단체들을 통해서 이 편지들이 소개가 되고. 특히 미국에서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 편지의 원본을 가지고 당시 미국 정부나 의회랄지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면서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고 했던 미국의 그런 인권단체들의 활동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서 전두환 신군부에게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광주 시민의 투쟁을, 이런 걸 하려고 하는 이런 활동들을 많이 펼쳤던 것이죠. 그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황 - 해외에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알렸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해외에서 대한민국이 신군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5.18의 문제를 좀 더 완만하게 해결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내 준 단초가 됐다는 이야기시네요?
◆ 최 - 그렇죠.
◇ 황 -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고요. 국내에서 앞으로 이런 자료들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요, 5.18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 최 - 그렇죠. 저희들이 5.18 연구를 하면서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5.18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세계사적인 그런 의의를 찾아내야 하는데. 이런 자료들이 그런 의의를 좀 더 지평을 넓혀가는 데에서 굉장히 소중한 자료로 활용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사실 5.18 자료들이 엄청나게 많이 널려 있는데 우리가 이제 이걸 제대로 찾아내지를 못하고 또 정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5.18을 기념하고 하는 사업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 이런 자료들을 찾아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후세에 연구자들과 후세에 역사가들에게 좋은 자료로 남겨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 황 - 그리고 연구원님. 이 진실규명을 위해서도 이런 자료들이 굉장히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 최 - 당연하죠. 현지인의 육성이 담겨 있는 진솔한 증언이기 때문에요.
◇ 황 - 앞으로 그런 자료를 찾는 작업, 굉장히 더 많이 하셔야 될 것 같고요. 관련해서 또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면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 짧게 한 말씀해 주시죠.
◆ 최 - 저는 이런 자료들을 통해서 5.18이 당시에 민주화운동으로서 어떻게 국제사회에 인식이 되었었고 국제사회가 또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했으며 이런 것들이 한국 민주화의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연구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서 분석을 해 나가야죠. 이게 우리 광주 민주화운동에 세계사적인 지평과 의의를 넓히는 데 굉장히 중요한 그런 단서가 된다고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황 -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 최용주 연구원님의 활동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최 - 네, 고맙습니다.
◇ 황 - 지금까지 최용주 5.18 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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