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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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사람]전라도말 자랑대회 '질로존상' 수상자(김정순/무안 청계)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30~08:57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 (이하 황) – 3부 시작하겠습니다. 주목할 만한 지역 인물을 집중 인터뷰하는 오늘 이 사람 시간입니다. 지난 5일,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는 여덟 번째 전라도 말 자랑대회가 열렸습니다. 전라도에서 전라도 말 듣기 점점 어려워진다라는 이야기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요. 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말이 담고 있는 문화도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전라도 말과 문화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립민속박물관. 그리고 전라도닷컴이 함께 매년 전라도 말 자랑대회, 이 대회를 열고 있는데요. 상 이름도 질로 존 상, 영판 오진 상, 어찌끄나 상. 전부 전라도 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사람 전라도 말 자랑대회에서 질로 존 상을 받으신 무안 청계 김정순 어머니,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 김정순 전라도말 자랑대회 질로 존상 수상자 (이하 김) – 네.
◇ 황 – 축하드립니다.
◆ 김 – 안녕하세요.
◇ 황 – 네, 이번에 전라도 말 대회에서 구수한 전라도 말을 가장, 질로 잘하셔서 상을 받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 김 – 몰라요, 어째서 상을 받았는지.
◇ 황 – 말씀을 잘하시고 전라도 말 그만큼 구수하게 하셔서 상을 받으신 것 같은데요. 어머님. 어떻게 이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이 대회에 출전하게 되셨어요?
◆ 김 – 우리 여성센터 선생님이 가자고 해서 갔어요. 뭔 소리지도 모르고 갔거든요.
◇ 황 – 네, 그냥 가자고 해서 가서 그냥 참여하셨는데 상도 받으셨어요?
◆ 김 – 네.
◇ 황 – 상 받고 기분은 어떠셨습니까?
◆ 김 – 참 꿈이냐, 생시냐 했어요. 생각도 못한 상을 받았어요.
◇ 황 – 평소에 이렇게 노래자랑이나 주변에 이렇게 잔치 나가시면 선물이나 상 많이 받으세요?
◆ 김 - 네, 받아요. 작년에도 거시기 노인 잔치하는 데 가서도 등수 안에 들었었어요.
◇ 황 – 그때도 이렇게 뭐 전라도 말 가지고 등수에 드셨어요? 아니면 그때는 뭐 다른 거로?
◆ 김 - 노래 불러가꼬.
◇ 황 - 우리 어머님은...
◆ 김 – 노래는 또 잘 부르거든요.
◇ 황 – 우리 어머님은 노래도 잘하시고 구수한 전라도 말도 잘하시고 흥이 많으시네요.
◆ 김 – 나도 이참에 노래하는 건 줄 알고 갔는데 전라도 말하는 데래요.
◇ 황 – 우리 어머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 김 - 83세요.
◇ 황 - 아, 83세. 평생을 무안에서 사셨어요?
◆ 김 – 여기 현경 마산 1구서 살다가. 1구서 태어나서 살다가 서울 가서 30년 살고 왔어요.
◇ 황 - 30년을 외지에서 사셨는데도 이 전라도 말을 잊지 않으셨어요?
◆ 김 - 영등포가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괜찮던데요?
◇ 황 - 서울에 사시면서 계속 전라도분들이랑 이야기를 계속 전라도 말로 하셨구나. 어떤 자랑을 하셔서 제일 좋은 상을, 질로 존 상을 받으셨는지가 궁금한데. 그때 하셨던 이야기 잠깐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김 - 전남 무안군 현경면 마산 1구에서 사는 김정순이요. 그런디 내가 할 말은 동네에서 돈 6만 원을 꾸어가꼬 목포 가서 쇠비릇 한 동으로 사다가 동네 도부를 한 께 겁나게 라. 아직 반통도 더 남았는디. 이제 그놈 먹고 사는디. 동네 어르신이 아니, 저 오두막집을 네가 인수를 해라. 그래서 인수를 나락 두 가마에 인수를 한 집인데. 한 가마에 질라해도 이 집을 이렇게 못 갚으고 이러고 산께 네가 인수를 하면 어떠냐 그래서. 아니, 오빠 돈이 없는데 나는 어찌고 인수를 한다오 그렁께. 아니 그것이 아니고 내가 두부 판을 밀어줄 텐게 기술도 갈쳐주고 할 텐게 두부를 해라. 그래서 너무 고맙소잉 그렁께. 간수는 해외 가서 한 동을. 간수를 너다놓고. 물 30동을 길러다 놓고. 나무 100무리를 사놓고 두부를 시작을 했어요.
◇ 황 – 어머님.
◆ 김 - 그거로 콩 서 대를 담그면 서 대씩 해서 두 솥을 하려면 열 대를 담그는디 물이 서른 동이. 두부가 물로만 하대요? 그래가꼬 그 두부를 콩 서 대를 담그면 45모가 나오는디 엄청 많이 남아부려, 돈이. 뭐 장사해도 안 남는단 사람은 거짓말이고 그러코 반 푼이 더 남아버리고. 인자 그래서 두부 장사해서 돈을 벌고 살기는 살겄는디. 두부에서 폴고 집에서 집 폴고 뭐대서 돈 모태노면 신랑이 돈을 내노라고 그러면 뭔 돈을 내놓냐고 그러면 두부 못한다니께 두부 할 욕심으로.
◇ 황 – 두부. 네, 네.
◆ 김 – 두부 할 욕심으로 두부를 주기도 허고. 안 주면 저녁에는 얼른 불안해서 안 주면 걍 도마에 가세가꼬 잘라가는 사람도 있고. 객기할라고 가서. 계속 그러는디 마을 장에 곡슥 장사를 하면 어떠냐고 그래서. 아니, 마을도 아닌데 여기는 여기서 고상하는디 서울 가서 우물 장사나 하라고 사람들이 그래요. 나는 자도 모르고 내 이름도 못 쓴께.
◇ 황 – 어머님. 방금 이야기...
◆ 김 – 사람들이 곡슥을 전부 갖다중께 그나마 돈은 엄청나게 불고 차고 가고 돈 목포 상인이 돈 3만 원을 주면 그마만치 물겐을 사면 어따 못하겄어요, 물겐을. 옛날에는 1200원이라...
◇ 황 - 잠깐만, 어머님, 어머님. 지금 방금 하신 얘기를 쭉 들었는데 결국은 지금 살아온 과정. 두부, 이제 전라도 말로 뜨부를 팔아서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고 생계를 유지한 돈 일부를 바깥 분이 이렇게 노름한다고 가져갔던 그런 얘기를 곁들어서 생활 속의 이야기를 그냥 편하게 쭉쭉 던지셨네요.
◆ 김 - 야.
◇ 황 - 그러면 이 대회에 따로 원고랄지 이런 걸 준비하신 게 아니고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현장에서 그냥 생각나신 대로 하시면서 대상. 질로 존 상까지 받으신 거네요?
◆ 김 – 그랬는가 보.
◇ 황 - 그만큼 어머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그다음에 저도 일정 부분 100% 모든 걸 다이해하지 않았는데 많은 부분들 이해가 되는데. 그만큼 또 전라도 말들이 좀 잊혀지고 있고 그렇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떠신가요? 어머님이 생각하신 이 전라도 말, 구수하고 그만큼 또 삶에 어떤 것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머님 전라도 말 좋아하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 – 그냥 여그 사는 이러고 살어요, 나는.
◇ 황 - 그런데 어머님.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머님 사시면서 바깥 분이 도박도 좋아하시고 그러셔서 고생도 좀 많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 김 - 말도 못혀요. 그런께 나는 2년 해도 서방 이야기를 할려면 1년 해도 못다한께 다음 사람 올라오시라고 나는 내려간다고 내려왔어요.
◇ 황 – 서방 이야기 할 걸 내년에 또 가지고 오겠죠? 바깥 분 이야기 가지고 가시면 또 질로 존 상 받으시는 거 아닌가 싶네요.
◆ 김 - 서방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무안군에서 나 고생한 것은 다 알아라우.
◇ 황 - 그만큼 생활이 배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를 많이 끌어가셨기 때문에 또 그러셨는데. 질로 존 상 받으시고 주변에서 뭐라고 그러시던가요?
◆ 김 – 아이고, 참말로. 아주 말과 여다. 공부만 못 했지 내가. 백사를 다 잘허는 사람이여 여기 동네서도. 나 서울서 인문 간 딸이 집을 사줘서 그 집이 재개발돼서 10억을 받아가꼬 자기들 일일이 떼어가서 주고 가꼬왔는디 시골에서 여기 내려올 때는 서울서 내려올 때는 막걸리 한 되라도 받아서 전에 나 없을 때 밥 한 숟가락이라도 준 사람, 그 사람들 생각허고. 장이라도 가면 밥이라도 사주고 막걸리라도 받아서 나눠먹꼬. 얼마,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께 내가 그러고 사요.
◇ 황 - 그런데 어머님. 공부를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야기 들으면서 지금도 팔십이 넘으셨는데 이 카랑카랑한 목소리. 공부도 잘하셨을 것 같은데 왜 공부를 못하셨다는 말씀을 하실까요?
◆ 김 - 우리 아버지가 일꾼 둘을 데리고 산 사람인디 여자는 공부를 하면 서방을 두면 안 편하다고 학교에서 이박장을 우리 조카가 가자는디 학교를 못간덕데라야. 그래가꼬 옛날에 배만 때하고 일만해야 쓴다고 해서 일만하고 그런 줄만 알고 살았는디.
◇ 황 - 그러면 학교를 안 다니셔서 공부를 못하셨다면 그러면 글도 좀 늦게 배우셨어요, 어머님?
◆ 김 – 암것도 내 이름도 못 쓰는디. 은행에 가면 은행 아가끼가 써줌서 그렇게 쓰라고 합디다. 그래서 대충 됐는데 여기서 여성센터 간께 선생님이 한바탕 읽어주고 받아쓰기하라고 하면 내가 받아쓰기 100점 맞아요, 요새.
◇ 황 – 언제부터...
◆ 김 – 너무 영리하다 해쌉디다야.
◇ 황 – 그러니까요. 어머니 언제 그러면 글은 처음 배우셨어요? 몇 살 때?
◆ 김 - 작년에 82에 여성센터 3월 16일 날 가가지고 3월 16일 날 가서도 뭐 헌다고 안 가고 뭐 헌다고 안 가고 일주일에 두 번이 다 안 다녀지데요.
◇ 황 - 어머님 82살에 배우신 글인데 지금도 시험을 받아쓰기 보시면 100점을 받으세요?
◆ 김 - 내가 100점 맞아요, 나. 장난하는 말이 아니에요.
◇ 황 - 어머님의 이 촉기와 그다음에 또 세상을 풀어가는 이런 느낌들 때문에 이번에 질로 존 수상을 받으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앞으로 생활하고 그러시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 주시죠. 지금 이 전라도 사투리의 아름다움. 또는 그런 부분들을 좀 더 바깥 분들, 서울이나 이런 타지 사람들도 좀 많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습니까.
◆ 김 - 그래유.
◇ 황 - 네, 어머님. 이렇게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또 내년에도 아마 출전하시면 또 질로 존 상 받으실 것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 - 네, 안녕히 가세요. 들어가시죠.
◇ 황 - 지금까지 전라도 사투리 자랑대회에서 질로 존 상을 받으신 김정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우와, 어머님의 이 사투리가 생활 속에서 착착 묻어나서 굉장히 아침 일찍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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