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됐지만 5.18의 정신과 가치를 폄훼하려는 그런 시도들.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 씨는 5.18을 북한이 배후 조종을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이런 식의 주장도 하고 있는데요. 최근 5.18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지용 씨가 지만원 씨가 자신을 북한 특수군 73 광수로 지목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던 5.18의 진실을 밝히고자 나섰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5.18기념문화센터 임종수 소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 임종수 (이하 임) - 네, 안녕하세요. ◇ 황 - 먼저 5.18의 북한 특수군이 있다고 지만원 씨가 주장을 하면서 광수라는 지칭들을 쓰는데요. 광수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부터 들어볼까요. ◆ 임 - 네, 지만원 씨가 5.18을 왜곡하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악의적으로 조작을 해오고 유포를 해왔는데요. 광수는 이제 북한에서 5.18 때 600여 명의 특수군이 파견됐고 그 특수군인들이 600여 명인데. 1번부터 거의 600번까지 거의 오백몇 번까지 해서 번호를 매겼습니다, 광수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광수 73번은 지금 지용 씨를 지칭을 하고 73번은 북한의 현재 국방위 부위원장을 하고 있는 오극렬 씨, 인민군 대장도 했는데요. 이 사람이 5.18 때 내려와서 광수 73으로 활동을 하다가 다시 월북해서 그 공으로 출세해서 인민군 대장을 달고 국방위 부위원장을 달았다. 이런 논리로 지금 유포를 하고 있는 거죠. ◇ 황 - 다시 말하면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번호를 붙여서 73 광수 또는 광수 73이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다. 북에서 내려온 사람이다라고 시민군들을 왜곡하고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 임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거기 보면 단지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사람뿐만 아니고 그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는 광주 시민들의 경우에도 번호를 붙여서 생김새가 비슷하거나 이런 사람들을 북한에 지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하고 연계를 하는 이런 상당히 악의적인 수법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 황 - 악의적이기도 하고 상당히 어이없는 그런 일 아니겠습니까? ◆ 임 - 네, 그렇죠. 그런데 어이없는데도 그게 상당히 먹혔다는 이야기예요. 그동안의 권위주의 정부에서 정부기관까지 나서서 이런 것들을 부추기고 유포시키고. 심지어 재벌에서도 돈을 대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이것 잘 모르는 국민들, 특히 경상도 쪽이나 수도권에 있는 분들이 진짜 광주항쟁은 불순분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 황 - 그래서 이번에 광수 73으로 지목된 지용 씨가 직접 본인이 광수 73으로 지목된 시민군이었다고 밝히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하시기는 좀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 임 - 처음에 이분이 저한테 찾아와서 내가 광수 73으로 지목된 사람인데 이 방법에 대해서 저한테 문의를 했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일단 언론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확산시키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라고 제가 설득을 해서 했는데. 굉장히 언론에 많이 유포되면서 전국에서 자기를 아는 분들한테 다 전화가 온 모양이에요. 그래서 상당히 그게 부담이 됐던 모양입니다. ◇ 황 - 좀 그러신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우리 임종수 소장님과 광수 73으로 지목된 지용 씨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이 일로 그분이 찾아오시면서인가요? ◆ 임 - 아닙니다. 원래 제가 금호동 천주교회를 같이 다니는 같은 교우 관계인데요. 이제 제가 최근에 5.18 38주년을 맞이해서 저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영창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성당에도 많이 알려지고 신도들도 많이 구경을 오시는데. 이런 5.18 관련한 개인적인 문제가 발생하니까 자연스럽게 저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 황 - 지용 씨는 어떤 분이십니까?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다면 그분이 어떤 분이지 누구보다 우리 소장님이 잘 아시겠네요. ◆ 임 - 네, 어제도 많은 언론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는데요. 이분은 굉장히 지역에서 자기 할아버님이나 아버님이 항일 정신을 선양했던. 어떻게 보면 교육 사업가이고. 또 굉장히 기부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좋은 일도 많이 하셔서 지역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높은 그런 집안입니다. ◇ 황 -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던 광주의 토박이라는 말씀이시네요? ◆ 임 - 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도 광주에서 태어나셨죠. ◇ 황 - 다시 이야기하면 지만원 씨가 얘기하는 북에서 내려온 인물은 절대적으로 아니라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얘기죠. ◆ 임 – 그렇습니다. 특히 할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호남의 부호로서 꼽히는 분입니다. 옛날에는 지응현 이분의 땅을 밟지 않고는 광주로 들어올 수 없다 할 정도로 굉장히 땅이 많으신 분이고. 또 많은 사업들을 하셨던 분인데. 이분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애국정신이라든가 반일사상을 선양하기 위해서 일제의 혹독한 강점기 하에서도 어떤 고려 말 충신들을 모신 사당, 병천사를 건립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선양사업을 했고 또 기부사업도 많이 하셨죠. ◇ 황 - 지용 씨 할아버지 지응현 씨가 병천사를 직접 건립하신 분이라는 말씀이시네요? ◆ 임 - 네, 그렇습니다. ◇ 황 - 대단히 지역을 위해서 활동하고 또 반일사상. 우리 국가를 위해서 활동해 오신 집안의 후손이신데. 이런 분이 어떻게 북한 특수군, 일명 광수 73으로 지목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임 - 우선 무차별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600여 명에 달하는 특수군인들을 자기들이 입수한 사진들 있지 않습니까? 그 사진도 어떻게 입수했는지 상당히 의심이 많이 갑니다. 찍기 어려운 사진들 찍어서 정보기관과 연계가 되어 있지 않았나 이렇게 다들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번호를 붙이다 보니까 이런 어이없는 상황도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황 - 당사자이신 지용 씨는 본인이 이렇게 광주 73으로 불려진다는 사실을 언제 아셨던 거죠? ◆ 임 - 이분도 거의 5.18 이후에 38년 동안 자기는 5.18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업하신 것도 있고. 집안에 여러 가지 문제도 있어서. 5.18 관련 됐다는 이야기를 안 하고 지내다가 지금 지난주쯤 큰딸이 5.18 관련한 뉴스를 보다가 인터넷 검색을 자연스럽게 했어요. 그런데 광수 73으로 지목된 사람이 아버지 모습하고 너무 똑같은 거예요. 왜냐면 아버지가 그 당시에 독특하게 화이티를 입고 계셨는데. ◇ 황 - 사진 저도 봤습니다. 굉장히 풍채도 있으시고요. ◆ 임 – 레슬링을 하셔서 몸도 좋으신 데다가 안경까지 끼셨어요, 선글라스를. 그리고 화이티를 입었는데. 따님은 아버님의 앨범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파악을 한 거죠. 그래서 아버님께 그것을 카톡으로 보내고 아버님이 그걸 보고는 분노하셔서 저한테 오신 거예요. 그분은 광수라는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오셨어요. 그리고 지만원이라는 사람도 모르고 와서 제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이분이 정말 흥분하셨어요. 그래서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지금부터는 이제 5.18에 대해서 적극 자기도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 황 - 지용 씨는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신 겁니까? ◆ 임 - 이분이 이제 원래 여수에서 선박사업을 하시다가 휴일이 5월 18일 일요일인데 그때 자연스럽게 집에 다니러 올라오셨다가 계엄군들의 만행을 본 거예요. 특히 충장로 3가 쪽에서 당구장에서 계엄군들이 학생들을, 젊은 사람들을 끌어 내려서 무릎을 꿇리고 착금한 상태에서 허벅지를 칼로 찌르는 이 상황을 본 거예요. 그래서 이 양반이 계엄군하고 맞서 싸우게 됩니다. 자기는 저 계엄군 한 명하고 같이 죽기만 하면 된다고 그럴 정도로 분노를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나서는 이분이 총을 들고 도청에 들어와서 당시에 박남선 상황실장이 원래 아시던 분인데. 같이 그 안에서 총기를 들고 시내를 지프차 타고 다니면서 총기를 어린애들이 갖고 경우가 있었어요, 옛날에. 공원 앞에서 보면 총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오발사고가 우려돼서 그 총들을 수거를 해서 도청으로 가져오고 이런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 황 - 결국은 5.18 민주화운동이 소수 지만호 씨가 이야기하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 아니고 시민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계엄군들의 만행에 분노해서 일어나는 그런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런 분이시네요? ◆ 임 - 네, 이분 부인도 자택이 바로 불로동 다리 쪽이 도청에서 가깝잖아요. 그래서 부인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김밥을 사서 매일 날랐습니다, 시민군한테. 그래서 가족이 전부 나서서 5.18을 하셨고 그때는 모든 시민이 다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굉장히 겸손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 황 - 당시의 상황을 너무나 잘 설명을 지용 씨가 해 주시는 바로 그 가장 전형적인 분이 아니실까 싶은데요. 그리고 이분께서 전일빌딩 헬기 사격 목격담 이야기도 들려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도 좀 전해 주시죠. ◆ 임 - 네, 이분은 주로 집이 그쪽에 사직동 성암맨션 바로 그쪽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자주 왔다갔다 다녔다고 해요, 초장기에. 도청도 다니고 하는데. 그날도 적십자병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총소리가 나서 위를 보니까 바로 그 옆에 양림다리가 있습니다. 양림다리 위쪽에서 도청 쪽을 향해서 전일빌딩 쪽을 향해서 총을 계속 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생생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 황 - 이런 부분들, 이런 증언들이 계속 나오면서 앞으로 5.18에 대한 진실규명, 저희들이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