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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518세계화에 기여_5.18민주화운동 유네스코 등재기념 사업, 김영진 이사장_시선집중광주_20180425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작가 최은영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올해가 518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세계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 된지 7년째 되는 해입니다. 당시 정부 지원 없이 민간에서 추진을 했었고요. 광주와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사회가 518의 의미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지난 1988년 광주 청문위원회에서는 청문위원으로 또 지난 2011년에는 518민주화 운동 기록물을 세계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 큰 역할을 해 오신 분이죠. 518민주화 운동 유네스코 등재 기념사업 김영진 이사장과 함께 유네스코 등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 5.18민주화운동 유네스코 등재기념 사업, 김영진 이사장(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 황 - 참 오랫동안 노력해오셨고 결과를 내셨는데 벌써 7년이 지났네요.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518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등재된 것. 굉장히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거 같은데요?
◆ 김 - 네. 제가 2007년에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원 연맹 의장에 취임하기 위해서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자연 유산과 문화유산을 주로 생각을 했는데 역사기록 유산이라는 것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그것을 자세하게 봤는데 아프리카의 넬슨만델라가 나오고 미국의 흑인해방 운동가가 나오고 또 동아시아 편은 필리핀의 아퀴노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왜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은 안 나옵니까 그랬더니 그것은 우리가 선포한 것이 아니고 해당 정부나 NGO,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모아서 신청하면 IAC라는 국제 천문 기구가 현장 출사를 해서 선포합니다. 그러면 광주 518을 난지가 29년인데 내년이 30주년인데 신청은 됐습니까? 물어보니까 518도 안되고 419도 안되고 심지어 3.1운동도 신청도 안됐다는 것이 확인이 됐습니다. 저는 참 아찔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게 그렇게 과정이 돼서 자료를 가지고 와서 우리 주변에 분들과 뜻있는 분들과 같이 지구를 만들고 또 518유족회 부상자회 등과 함께해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 광주 518민주화 운동이 역사기록 유산에 등재하게 되었습니다.
◇ 황 - 그 역사 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 기록유산으로 등재가 갖고 있는 의미 어떤 의미죠?
◆ 김 -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UN과 유네스코는 지구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정의와 평화 문제에 대해서 관련 있는 자료들을 공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두 눈으로 등재가 되면 공인이 되기 때문에 프랑스혁명사 루마니아의 공산혁명을 민중혁명 이런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런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게 UN과 유네스코 가맹국의 전부 자료가 다 가고 거기에 전시가 되고 또 심지어는 가이드북에까지 올라가게 되고 이렇게 되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감사한 민족의 유산인가를 우리 후손들에게도 아주 뿌듯한 감동으로 안겨주게 됩니다.
◇ 황 - 결국은 518의 진정한 의미를 세계적으로 알리기는 확산에 큰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 김 - 그렇습니다.
◇ 황 - 그런데 이사장님 등재활동을 하실 때가 이명박 정부시절 아니신가요?
◆ 김 - 그렇습니다.
◇ 황 - 이명박 정부시절 굉장히 하셨으면 큰 어려움들이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 김 - 옳은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MB의 천박한 역사인식이 한 번 광주 518묘역을 오고는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MB를 당선 시킨 뉴라이트 역사학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만호 변호사 이런 분들. 제가 유네스코에 가서 이런 자료를 제출하고 서명을 하고 노력했는데 거기를 다 찾아다니면서 김영진이라는 사람은 내란을 선동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의 그러고 그가 청년 시절부터 518에 참여했고 또 주간하다 감옥 가고 이런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이 낸 이것은 검증을 해야지 무슨 518이것을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냐. 이렇게 훼방을 놨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마침내 승리합니다.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주소연 양. 제가 감명 있게 생각나는 것은 주소연 양이 당시 외고 1학년.
◇ 황 - 당시 기록한 일기장을 썼던 학생을 말하는 것이죠?
◆ 김 - 눈물이 젖어있는 일기장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서 이것은 프랑스 혁명사에 버금가는 감동이 있다. 이렇게 돼서 마침내 우리 광주 518이 국제적인 공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 황 - 방금 이사장님 일기장 이야기 하시니까 일기장이 한참 유네스코 등재 당시에는 안네의 일기와 연계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던 생각이 문득 드는데요. 구체적으로 유네스코의 기록 유산으로 518의 어떤 자료들이 등재된 겁니까?
◆ 김 - 광주 518당시에 우리 시민들이 겪었던 그 고난과 아픔. 그러니까 방금 말씀 드린 대로 가령 일기장이라든가. 그 당시에 나왔던 선언물이라든가. 사진이라든가. 이런 자료들을 여러분은 장롱 속에 간직하고 계시면 추억을 담보할 수는 있어도 우리 518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 데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것을 제출해 주십시오하고 그 당시에 제가 우리 추진 기구에서 우리 광주시민들에게나 각계에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4만 6천점. 84만 페이지의 2천 컷의 이상들의 사진들이 모아졌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광주 시민들이 같이 한 마음으로 그 때 추진했던 저희 기구를 신뢰하시고 그 때 돌아가 신부님, 스님, 목사님. 종교를 초월했습니다.
◇ 황 - 다 함께 하셨던 거죠?
◆ 김 - 함께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 황 - 결국 기록물들이 앞으로 정말 518의 진실을 밝히는데 기초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제 518특별법도 제정이 됐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518의 진정한 진실 규명이 돼야 될 텐데 어떤 식으로 518이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끝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 김 - 518민주화 운동이 아직도 핵심인 발포명령자. 그 다음에 그 때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희생자들 과연 구체적으로 몇 명인지 이런 것들도 파악이 안 돼 있고요. 또 한 가지는 제가 광주 청문회 현장 조사 위원장을 했었습니다만 지금 국회기록에 여야가 그 당시 민정당과 평민당이 합의해서 낸 보고서가 아직도 채택이 안 되고 제 각각의 보고서가 지금도 국회 수장고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국제적으로는 공인을 받았는데 국내에서 정치체제가 제대로 되지 못함으로서 이런 것들이 합의가 안 되고 있는 이런 진실을 앞으로 3년 동안 연장된 진상 조사를 통해서 명백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황 - 네 오늘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 - 네 고맙습니다.
◇ 황 - 518민주화 운동 유네스코 등재 기념 사업회 김영진 이사장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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