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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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소록도의 마지막 신사, 철거해야 한다_국제고등학교 노성태 국사 수석교사_시선집중광주_20180306

◇ 황 - 이어서 소록도 신사가 철거되고 민족정신이 제대로 서야 되지 않느냐하는 이런 입장을 갖고 계신 분의 이야기도 곁들여 듣겠습니다. 광주 국제고등학교 수석역사교사이시죠. 노성태 선생님 연결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국제고등학교 노성태 국사 수석교사(이하 노) - 네 안녕하십니까.

◇ 황 - 지금 소록도 신사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신사. 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 쪽에 무게 중심을 두시는 거 같은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 노 - 소록도에 남은 신사는 일본왕을 신으로 모시고 한센병 환자들에게까지 강제로 일본왕을 신왕과 백성임을 명심 시켰던 현장입니다. 따라서 신사는 형무소라든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등 여타 일제 강점기 시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죠. 기억하거나 교육 자료로 삼을 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935년에 만든 일제 신사의 잔여가 남아있고 건축학 적으로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서 문화재를 지정했다면 이거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역사의식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죠. 1995년인가요. 광복 50주년을 맞아서 김영삼 정부가 조선 총독부 헐었잖아요. 광화문을 청산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헐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경복궁 안에 건축했기 때문에 민족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죠.

◇ 황 - 그만큼 신사가 갖고 있는 의미가 우리가 봤을 때 남겨둘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렇다면 신사를 통해서 일본 제국주의가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과정들에 대한 이해가 있을 거 같은데요. 일본에게 신사참배가 갖고 있는 의미는 어떤 거라고 선생님께서는 생각하십니까?

◆ 노 - 일본에는 신사 천국이죠. 10만개가 넘는 신사가 있고 신도만도 1억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사는 그 장소에서 또 받들었던 각종 신을 제사 지내는 이런 제사 시설인거예요. 임진왜란 때 끌려가서 일본 도자기의 시조가 됐던 분이 있는데 일본에서 도자기 신이 되거든요. 신이 된 그를 모시는 친일파가 일본 사가현 아리타에 있는 도산 신사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당과 비슷한 개념이죠. 이게 문제는 뭐냐면 여러 신중에 일본왕을 모시는 신사라든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전범을 모시는 신사. 다 아시는 거처럼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제가 40년대에 한반도의 민족 말살 정책을 펴게 되는데 다 아는 것처럼 우리말 사용을 불허하고 우리 역사교육 불허하고 창씨 개명할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도 일본 천왕의 후손이라면서 한국 식민을 육성하기 위해서 한국 식민 서사를 암송하게 했고 한국을 절도 시켰고 우리나라 1000여 곳의 일본왕의 신을 모시는 신사를 건립하고 참여를 강요했던 것은 조선 너희들도 일본 천왕의 신하요. 백성이니. 전쟁터에 나가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소록도 신사도 광주에 있었던 광주 공원에 있었던 신사도 마찬가지지만 한센병 환자들에게까지 일본 천왕의 백성이 될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 황 - 좀 전에 민족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야기로는 그런 아픔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우리들 스스로가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 자료로서 남길 필요는 있진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던데요.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시겠습니까?

◆ 노 - 소록도 내 신사가 원래 기능을 잃었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던 만들었던 1000여개 중에 유일하게 남은 희소성도 있고 그래서 교육 자료로 삼자고 주장하는데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러나 역사를 놓고 생각이 다른 것은 역사를 보는 관점. 그 역사물이 갖는 의미의 크기를 각기 달리 보기 때문이거든요.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신사는 형무소라든가. 일본 영사관과 같은 일제 강점기 시설물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죠. 일제가 한국국민의 정체성 뿌리를 부정하고 일본 천왕의 식민이 되겠다는 맹세를 강요했던 만큼 민족의 정기를 다시 세우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저는 보조해서 교육 자료로 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아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 황 - 이런 논란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일본의 잔재,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현실에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된 역사적 친일을 청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 과연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지도 곁들여 말씀해주시죠.

◆ 노 - 지금 그렇습니다. 일제에서 벗어 난지 70년이 지났는데도 곳곳에 유무형의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광주 공원 같은 경우에도 지금 많은 공적들이라든가. 선정비를 모아 둔 곳이 있는데 제일 앞쪽에 있는 가장 큰 비. 그러니까 정치를 잘했다고 세운 비가 전라남도 일대에 4대 관찰사를 지낸 선정비이고요. 또 하나가 관찰사를 지낸 이근호의 것인데 두 사람 모두 일제 황실로부터 남작을 받았던 친일파입니다. 그런데도 민주의 성지라고 말하는 광주 시민들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지난 수십 년간 광주 공원을 지금 518표지석도 서있고 4월 혁명 추모비도 있고 기념비도 서있었던 그 고장에 나란히 있도록 활용하고 있거든요.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 황 - 다시 말하면 그런 부분들 우리들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 이런 여러 가지 유적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서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고 지울 수 있는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 노 - 네.

◇ 황 -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노 - 네 감사합니다.

◇ 황 - 지금까지 광주 국제고등학교 수석역사교수이신 노성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결국 소록도에 있는 신사의 철거 보존의 문제도 우리가 우리 역사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그런 고민 속에서 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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