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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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교 역사_국제고등학교 노성태 역사교사_시선집중광주_20170626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15~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정유라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지속적인 외교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어찌 보면 요즘에 미국과의 관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요즘 국익이니 사대외교니 하는 말 사드문제가지고 튀어나오고 있죠. 오늘은 역사 속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국제고등학교 노성태 역사교사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국제고등학교 노성태 역사교사(이하 노) - 네 안녕하세요.

◇ 황 - 요즘 우리나라의 외교상황을 보면서 다시 주권 국가의 역할 사대주의 이런 이야기들 많이 하는데요. 이런 최근의 논란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실 텐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노 -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에 대한 논란을 말하는 거 같은데요. 저는 역사교사이기 때문에 외교라든가 정치는 잘 모릅니다만 대한민국의 시민의 한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저는 사드배치의 주도가 누구냐 이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의 영토를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대한민국이 배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혹여 다른 나라의 필요에 의해서라고 한다면 이건 문제가 잦아진다고 보거든요. 방금 말씀드렸던 주권국인지? 이런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문제가 심각한. 문정인 교수의 발언을 둘러쌓고 심각한 발언으로 몰아가면서 국민의 갈등이 커졌고 그리고 주권국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었지 않습니까. 두 강대국에 끼어서 자주적인 외교 결정마저 쉽지 않은 그런 모습이 역사교사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입니다.

◇ 황 - 조선말의 모습을 봤을 때 자주 외교의 필요성 굉장히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그렇다면 한미관계 동반자 이야기하는데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언제 이렇게 외교관계를 맺게 된 거죠?

◆ 노 - 우리나라가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조약은 아마 다 아시는 거처럼 1976년 강화조약에서 일본과 맺은 강화조약인데 원래 이름은 조일수호조약입니다. 그런데 서구와는 1881년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청이 알선해서 미국과 최초로 맺게 되는 데 이 조약이름이 조미수호통상조약입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미공사관이 서울에 설치가 되고요. 우리는 답례 친선을 위해서 미국의 민영익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파견되는데 이를 보빙사라하죠. 이후 미국과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또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광복군 훈련지원이 있었고요.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6.25참전 미군주둔 오늘의 사드배치까지 어찌 보면 미국과의 인연은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이런 인연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 황 -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미국과의 여러 가지관계들은 굉장히 밀접했네요. 그리고 어제가 또 6.25한국전쟁 발발한 날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한국전쟁당시 미국이 직접 와서 많은 미국인들이 피를 흘리면서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준 혈맹관계라는 말 밀접한 관계인데 요즘에 이런 한미 이런 논란들을 보면서 또 과연 우리의 주권의식들이 주권국가로서의 모습이 제대로 갖춰져 있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어 그런 모습 보면서 생각이 많이 드실 거 같아요.

◆ 노 - 저희가 좀 착잡한 심정이라 말씀 드렸는데요. 우리는 혈맹으로 생각하고 최고의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드를 설치하면서 부담금을 전액 한반도에서 지불해야한다. 이런 발언을 듣게 되면 우리가 주권국가인지 정말로 그렇게 요구하는 나라가 동맹국인지 이런 의심이 들 때 안타깝죠.

◇ 황 - 더불어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국가 사드관계로 엮여 있는 국가가 중국인데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어떻습니까? 미국보다 훨씬 오래되고 깊은 관계 아니겠습니까?

◆ 노 - 그렇습니다. 중국과는 조공과 책봉을 통한 역사적으로 일반적으로 맺어져 왔는데요. 중국 만리장성에 유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던 시스템이었던 거 같습니다. 거란 여진 몽골 족 등이 만주일대에서 세력을 키워서 나라를 건립했는데 이들 나라들은 늘 만리장성 이남에 농경 민주족인 한족이 세운 나라들 송이나 명나라 등을 괴롭혔거든요. 그래서 고려나 조선이 이들을 안쪽에서 견제해줬으면 하는 필요가 있었고요. 고려나 조선도 또 왕조의 정치적인 안정을 보장받고 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나 그 때나 외교라고 하는 것은 민은의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자주권을 얼마만큼 행사할 수 있었느냐. 예를 들면 약소국가가.

◇ 황 - 다시 말하면 외교관계라는 뜻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맺어지는 관계라는 말씀이잖습니까.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면서 협의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가는 관계가 외교관계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는 사대관계라 해서 조선시대 때 굉장히 친명주의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굉장히 중국에 대해서 예를 갖춘 그런 관계가 조선의 몰락을 부축인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 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노 - 지적할 수 없는 일면의 일리는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위치라든가 중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이런 관계를 엮어내는 질서가 조공과 책봉을 통한 동북아시아 질서이거든요. 그런데 책봉이라고 하는 것은 원칙은 그런 거죠. 전통적인 외교형식일 뿐 내정간섭을 받거나 종속되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조선은 조공에 대한 답례품을 통해서 중국의 선진문물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고 또 경제적인 실리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인데 문제점이 있잖아요. 힘이 약할 때나 외교관계를 잘못 풀어갈 때 등장하는 사대논란 정치권 논란이 그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조선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고 미국을 공사관을 서울에 설치하지만 조선은 워싱턴의 공사관을 설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황 -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 노 - 청나라가 심각하게 이의제기를 했고 방해를 했기 때문이죠.

◇ 황 - 그런 역사적인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가 현재 2017년 느껴야 될 것은 과연 어떻게 그러면 우리는 외교관계를 이끌어 가야 될 것 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역사교사로서 선생님. 2017년 우리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관계설정이랄지 전반적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끌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 노 - 어려운 질문인데요. 우리나라 역사적 인물로 내각을 구성한다면 늘 외무장관 1순위에 올랐던 분이 거란이 침입했을 때 싸우지 않고 담판을 통해서 강동6주의 땅을 빼앗은 서희 장군을 뽑고 하거든요. 그런데 서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였던 거란의 침약 의도를 정확하게 꿰뜷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교역량도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 한반도가 마주하고 있는 신 경제 강국 중국 또 핵을 자랑하는 북한, 그리고 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들 주변국가와 어떤 관계를 적립해야 할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한 면이 많습니다. 저는 답답함 속에 또 오히려 길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서희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요. 오히려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외교는 불가능한지 그런 대한민국을 한 번 꿈꿔봅니다.

◇ 황 - 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노 - 네 감사합니다.

◇ 황 - 지금까지 국제고등학교 노성태 역사교사와 함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외교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땠는지 한 번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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