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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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지만 국가와 광주시로부터 적절한 대우 받지 못해!_고 안병하 경무관의 아드님, 안호재씨_시선집중광주_20170517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15~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정유라
■ 진행 황동현 PD
◇ 황동현 진행자(이하 황) - 5.18의 숨은 영웅이라 불리는 안병하 경무관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5.18 당시 전남 경찰청에서 경무관으로 일을 했었는데요. 신군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광주 시민들을 지키다가 국가로부터 심한 고문도 받고 결국은 목숨까지 잃으신 분입니다. 안 경무관뿐만 아니라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 특히 광주 지역에 굉장히 많은데요. 이 분들에 대한 치유는 대단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5.18 37주년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는 5.18희생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아픔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 갖고자 합니다. 고 안병하 경무관의 아드님, 안호재씨 연결 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고 안병하 경무관의 아드님, 안호재씨(이하 안) - 네 안녕하세요.

◇ 황 - 잠깐 저희가 언급하긴 했었는데 아버님 안 경무관님과 5.18과의 인연에 대해서 정리 좀 해주시죠.

◆ 안 - 제 생각으로는 아버님이 80년 전남 경찰청 경무관을 맡으신 것은 광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 가족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저희 가족도 1988년 5월까지는 다른 공직자 가족과 같이 행복한 공직자 가족이었습니다.

◇ 황 - 실질적으로 5.18 당시 신군부에서는 시민들을 강경 진압하라 이렇게 요구를 했는데 지금 우리 안경무관께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그런 진압 보호하는 행동을 하셨던 거 아니겠습니까?

◆ 안 - 네

◇ 황 - 그래서 신군부의 미움을 받으시고 그 이후에 굉장히 고문도 받으시고 그랬는데 그러면 경무관님께서 몇 년도에 돌아가신 거죠?

◆ 안 - 1988년 10월 10날 돌아가셨습니다.

◇ 황 – 그럼 80년 5월 이후 88년까지의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 안 – 흠..... 아무런 도움도 못 받고 관심도 못 받고 좀 비참하게 돌아가셨죠. 간단한 치료만 돼도 부담이 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긴 도와주셨어요.

◇ 황 - 하지만 88년까지는 결국 전두환 정부 시절인데 신군부로서 정권을 갖게 된 전두환 정부로서는 이 안 경무관에 모질게 고문도 하고 그랬다는데 그 때 잠깐 언급하셨지만 가족의 삶이나 그런 부분이 굉장히 어려우셨을 거 같아요.

◆ 안 – 네....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 황 - 지금 선생님 말씀하시면서 그때의 그 상황들이 이렇게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시는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80년 당시 신군부의 어떤 지시에 충실히 따르셨으면 경찰로서의 미래가 굉장히 보장이 되셨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는데 앞장 서셨던 부분 아드님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안 - 한 번도 저희가 힘들었어도 아버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 황 -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에게 남기신 말도 있으실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 안 - 네. 아버님이 제일 힘들어 하셨던 것 중에 하나가 아버님만 무조건 따르시던 밑에 계신 분들 그 분들을 제대로 보호를 못한 것을 죄송스러워하고 또 하나는 아버님 능력이 안 돼서 광주 시민을 못 지켰다 경찰로서.... 그걸 되게 안타까워 하셨어요.

◇ 황 - 능력이 안됐다고 하시지만.... 광주 시민 누구나 다 기억하겠지만 가장 강력하게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광주 시민을 보호하신 분이 안병하 경찰국장이 아니셨을까 싶어요. 이후에 가족들께서 겪었던 그런 트라우마나 이런 부분도 있으실 텐데 그런 부분들이 국가 차원에서 좀 이렇게 치유나 이런 활동들이 적극적으로 있었나요?

◆ 안 - 치유보다도 저희 가족을 정부에서 힘들지 않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 황 - 실질적으로 전두환 정부 이후에도 최근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 때도 그런 지원이나 별로 없었나보죠?

◆ 안 - 80년 그 때 군사정권 시절 88년도까지 정권에서도 아버님만 미행하고 괴롭혔지 박근혜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 때처럼 우리 식구들까지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 황 - 그러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는 계속적으로 사찰도 있었고 여러 가지 가족들에 대해서 가족들이 생활하시는데 불편한 점을 많이 정부차원에서 줬다는 이야기 인가요?

◆ 안 - 정부가 했기 보다는 광주시에서 위의 압박을 받아서 저희한테 계속 힘들게 한 거죠.

◇ 황 - 어떻게 보면 광주 시민들을 위해서 이렇게 본인의 목숨까지 바치신 분인데 광주시나 이런데서 적극적으로 지원은 못해줄망정 그런 도움도 못 드리고 또 심리적으로 압박을 했단 이야기는 안타까운 일인데요. 그런 부분들이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드님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안 – 바뀐 거 같기도 해요. 2017년 5월 13일 날 국립묘지에서, 그 당시 5월 20일 날 순직한 경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서 아버님 말씀도 있고 해서 이번에 간단하게 추모식을 했어요. 저희 주관으로 해서. 그런데 광주시장이 화한을 보내셨더라고요. 그 화환의 의미가 37년 만에 광주시로부터 처음 꽃을 받아 본거였어요. 그리고 공식적인 말도 처음 들어 봤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 황 - 광주 윤장현 시장께서는 실은 5.18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진상을 규명하고자 노력하셨다, 라고 알려졌는데 실질적으로 안병하 경찰국장님의 어떤 스토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좀 무심하셨던 측면이 있었던 거 같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 안 - 상당히 무심하면서 제가 원망스러울 정도였죠.

◇ 황 - 앞으로 방금 말씀하신 이런 부분들도 좀 제대로 규명이 돼야 되고요. 또 그담에 가족분들의 지금까지 쌓였던 화나 아픔들도 국가적 차원, 사회적 차원에서 도움이 서로 좀 풀어가야 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거 같은데 가족으로서 이 5.18 37주년을 맞아서 사회에 대해서 바람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 안 - 이제 정부가 바뀐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저희가 30여년 간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들도 맘 편하게 살고 싶고 우리 애들한테도 미안하고요. 안병하의 손자들도 저희가 힘들어 하는 것 보더니 너무 안타까워하고요. 세월이 길다 보니까.

◇ 황 - 37년이면 정말 긴 세월인데 우리 안병하 국장님의 정의로운 의로운 행동 때문에 이렇게 후손들이 고통을 계속 받았다는 거 자체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일 것 같고요. 또 선생님 가족뿐만이 아니라 이런 5.18관련해서 이런 아픔들을 겪으신 분들 굉장히 많으실 거 같은데 선생님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정부차원에서 사회차원에서 이런 분들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역할을 해야 할 거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힘드실 텐데 이렇게 직접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 안 - 네 제 억울함을 알려주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황 -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 - 네 감사합니다.

◇ 황 - 지금까지 고 안병하 경무관의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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