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체로키 파일', 앞선 보도에서 설명드렸지만 이름도 내용도 낯설게 느껴지실텐데요.
만킬로미터나 떨어진 미국 워싱턴에선 44년 전 광주를 두고 비밀 전문을 왜 주고받게 됐을까요?
이어서 김철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체로키 파일은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비밀이 해제된 1996년, 미국 언론인 팀 셔록 기자에 의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5.18이 일어난 지 16년만에 공개된 이 문서에는 당시 미국 정부가 거의 실시간으로 광주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 팀 셔록/ '체로키 파일' 보도 미국 언론인 (2015년 5월 21일, 광주MBC 뉴스데스크)
"기밀해제돼서 구한 문서들이 좀 있고요. 그리고 그 때 5.18 당시 미국 정부가 뭘 했는지 알 수 있는 문서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체로키 파일의 기원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자신을 대표해 밴스 국무부 장관과 함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리처드 홀부르크 차관보와 로버트 리치 한국과장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서울에 도착해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와 함께 10.26 사건 이후 한국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와 여기에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별도의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탄생한 문건이 바로 '체로키'파일 입니다.
이 문건의 실제 작성자인 로버트 리치 한국 과장은 '체로키 파일'의 명명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로버트 리치 / 1980년 당시 미 국무부 한국 과장
"우리는 (한국의 상황을) 조용하게 유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별도의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체로키'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문건의 이름은 체로키입니다."
한국의 상황을 기록한 체로키 파일들은 다시 백악관과 국방부, 그리고 CIA로 보내졌고 이 문서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신군부 세력과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로 남게 됐습니다.
팀 셔록 기자에 의해 발굴된 59개 파일, 3천 5백여 페이지 분량의 체로키 파일은 지난 2017년 5.18 기록관에 기증돼 일부가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 이삼성 /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지난 2017년 6월 광주MBC 뉴스데스크)"가장 결정적인 시점에 미국의 대한(한국을 상대로 한)정책의 속살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건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고 공개가 됐더라도 중요한 부분이 가려져있는 것이 많습니다.
따라서 광주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기관이나 연구자들이라고 하면 이 문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어야 하지만 추가 문건 발굴이나 증언 확보작업은 미진하기만 합니다.
* 노영기 / 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주한미대사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중앙정보부도 있었을 테고 다양한 루트에서 올라온 정보들을 발굴을 다 해야죠. 그보다 많은 정보들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별로 못 찾았죠."
5.18 판도라의 상자로 여겨지는 체로키 파일의 작성자들의 증언과 진술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44년 전 당시 광주상황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보도해 나가겠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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