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페셜 [한걸음 더]

5.18 37주기28 - 5.18 취재기자 테리 앤더슨

김철원 기자 입력 2017-05-31 09:24:02 수정 2017-05-31 09:24:02 조회수 2

(앵커)
UN본부에서 열린 5.18 국제 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이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을 만나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 순간과 언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질문1. 5.18 당시 취재기자로 활동을 하셨는데요. 광주에 북한군이 침투했다거나 공산주의자들이 시위를 선동했다는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당시 취재기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1:"제가 생각하기에 전두환 신군부가 말하는 것처럼 5.18 때 북한군이나 공산당원이 시위를 부추겼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5.18 때 경찰과 군인의 과잉진압에 광주시민들과 학생들이 분노해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5.18은 사전에 계획돼 일어난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들의 폭력에 대응해 일어난 항쟁이었습니다."

질문2. 5.18을 취재하면서 마지막날과 그 전날이 인상깊었다는 기자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윤상원의 대변인과 관련해 어떤 기억이 있습니까.

답변2:"전남도청이 계엄군에게 진압되기 하루 전날인 1980년 5월 26일, 윤상원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기자 출입증을 발급해 줬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 외신기자들에게 6장의 출입증을 줬던 게 기억납니다. 그게 계엄군이 진압하기 전에 봤던 윤상원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전남도청 시민군 본부로 가서 여러 시신을 발견했는데 계단에 누워있는 윤상원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시신이 부분적으로 불에 타기도 했는데 윤상원 손 옆에 소총 탄창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질문3: 5.18 당시 기자, 특히나 외국기자들의 취재가 있어서 5.18의 진실이 외부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답변3:(전남도청이 진압되던 날인 5월 27일) 한국 국방부 대령이 저한테 마지막 진압 때 (단지) 두 명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군인 지프 차에서 내려서 전남도청 본부 쪽으로 가서 봤더니 17구의 시신이 정원에 놓여 있었습니다. 도청 계단에는 몇 구의 시신이 더 있었고요. 그와 같은 대령의 발언 때문에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이 이해하고 필요로 하는 기사를 보도하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정부는 항상 거짓말을 합니다. 또 정부는 항상 나쁜 짓을 하고요. 정부의 거짓말을 바로잡고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언론과 기자들의 역할입니다."

질문4. 오늘날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바탕에 5.18 항쟁이 있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답변4:"제가 생각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내는 탄핵은 한국민주주의의 대단히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한국은 그 시험을 잘 이겨냈습니다. 헌법을 지키면서 합법적으로 부패한 대통령을 몰아냈고, 새로운 권력을 선출해냈는데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그게 바로 자유로운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무기나 군대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낸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광주항쟁은 사람들이 죽고 감옥에 가는 등 실패했지만 그 이후 수십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왔습니다. 되돌아봤을 때 한국민들이 독재정부를 상대로 성공적으로 거부운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ANC▶
◀END▶
◀V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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