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페셜 [한걸음 더]

두개의 일기3 전태일, '부치지 못한 편지'

김철원 기자 입력 2018-05-24 23:06:15 수정 2018-05-24 23:06:15 조회수 1

(앵커)

특집 다큐 <두개의 일기>를
미리 보는 연속 보도,

오늘은 윤상원 열사에게
깊은 영향을 줬던
전태일 열사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죽음으로써 한국 사회를 깨운
전태일 열사의
일기나 편지 등을 살펴보면
가혹했던 노동 현실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보도에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지독한 가난 때문에 빨리 출세하고 싶었던 전태일.

(녹취)전태일 일기( 1967.3.18)"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사나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지만 정히 못 견디겠다."

이른 나이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재단사가 됐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선되지 않는 노동여건,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인터뷰)김영문 전태일 친구(분신 현장 목격)/
"(전태일이 몸에 불을 댕기면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 '일요일을 쉬게 해 달라' 외쳤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의 헌신은 한국사회를 깨웠습니다.

(인터뷰)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스스로 촛불이 돼서 자기 몸을 불태우면서 사회에 던진 어마어마한 충격은 노동운동으로 발전하면서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지고 있고"

많은 이들을 울린 전태일 평전.

전태일은 여기에서 대구의 야간학교인 청옥학교시절 친구인 원섭을 그리워하며 유서 형식의 편지를 썼습니다.

(녹취)전태일 편지/
"원섭아, 나는 재단사로써 이 사람들과 눈만 뜨면 같이 지내거든. 정말 여간 고역이 아니야. 부잣집 자녀들 같으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재롱이나 떨 나이에. 생존경쟁이라는 없어도 될 악마는 이 어린 동심에게 너무나 가혹한 매질을 하고 있네."

하지만 이 편지는 친구인 원섭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그렇게 4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오래 전 이민을 가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정원섭씨를 찾아냈습니다.

(일기낭독)
"원섭아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얼마나 중대하고 이상한 현상이고 평범한 사실이냐, 너는 내가 아는 친구, 나는 니가 아는 태일이..."

(인터뷰)정원섭 전태일 친구
"(태일이를) 도와주지 못한 걸 참 부끄럽게 생각하고 제가 감히 친구라고 말할 자격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벗, 전태일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가슴을 울립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ANC▶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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