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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이유 있는 항명"-구례서장 안종삼

광주MBC뉴스 기자 입력 2009-10-14 11:17:25 수정 2009-10-14 11:17:25 조회수 0

(앵커)
6.25 때 좌익에 부역한 보도연맹원들을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모두 풀어준 당시 구례경찰서장의 결단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당시 구례서장의 인도주의적 결정을 60년만에 확인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6.25가 터진 지 한달이 지난 1950년 7월 24일.

구례 경찰서에 좌익이나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로 보도연맹원 480명이 끌려왔습니다.

경찰은 후퇴하기 직전에 보도연맹원 모두를 사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선 안종삼 당시 구례경찰서장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안 서장은 "모두 풀어줄테니 나라에 충성하고 새사람이 돼 달라"며 "이 조치로 자신이 죽더라도 보도연맹원들이 대한민국 사람이 되는지를 지켜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에게서 만세가 터져나왔습니다.

(인터뷰)이강재/80세(안서장 지인)당시 21세
"안 서장이 인도적이지. 좌익하고 싶어서 한 사람 있었겠는가. 살려고 좌익도 하고 우익도 하고 그런 것이었으니까."

구례지역은 빨치산의 근거지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는데 안 서장의 인도주의적 결단은 살육을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인터뷰)김유성/80세(당시 대한청년단원)당시 21세
"개중에도 보복을 한 사람은 있지. 그렇지만 여순반란사건 때보다는 사람이 적게 죽었어요. 여순반란사건 나서는 학교에서 70명 잡아다가 기관총으로 군인들이 와서..."

당시 구례군민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은 병풍과 시호를 안 서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인터뷰)안승순/안종삼 서장 아들
"(아버지가) 다른 데로 발령이 났는데 다시 구례로 돌아오셨어요. 군민들도 만세를 부르고 반가워하고 와서 보니까 피아 간의 아무 피해가 없었어요."

안종삼 서장의 보도연맹원 석방 사실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전남지역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60년만에 공식 확인됐습니다.

(녹취)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
"미담 사례라도 볼 수 있고 희생을 줄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고요. 제가 조사한 지역에서는 구례가 유일했습니다."

학계에서는 당시 보도연맹 가입자수가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가운데 6.25 당시 수만명이 공권력의 즉결 처분에 따라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념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겼던 경찰서장의 이유 있는 결단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 기자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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