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문화재와 옛 기록물에서
선조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금요일 이슈인 투데이 시간입니다.
선조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금요일 이슈인 투데이 시간입니다.
담양에 있는 미암 일기는
현존하는 개인 기록 가운데,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데요.
현존하는 개인 기록 가운데,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데요.
미암 일기를 쓴 유희춘 선생과
아내, 덕봉 송종개 선생 이야기 들어보시죠.
아내, 덕봉 송종개 선생 이야기 들어보시죠.
정수정 여행작가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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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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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먼저 어떤 분의 일기를 보게 될지
알아야될 것 같은데,
알아야될 것 같은데,
'미암 유희춘'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이야기 해 주세요.
답변 1)
미암 유희춘은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기록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미암의 외조부인 금남 최부는 또 표해록의 저자로도 아주 유명하고요. 유계린의 아들로 해남에서 태어나 24세 덕봉 송종개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2년 뒤에 과거에 급제를 하게 돼 홍문관 등을 지내다가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돼 20여년 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되죠. 선조 때인 50대에 이르러 유배에서 풀려나 사헌부와 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내게 됩니다.
미암 유희춘은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기록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미암의 외조부인 금남 최부는 또 표해록의 저자로도 아주 유명하고요. 유계린의 아들로 해남에서 태어나 24세 덕봉 송종개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2년 뒤에 과거에 급제를 하게 돼 홍문관 등을 지내다가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돼 20여년 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되죠. 선조 때인 50대에 이르러 유배에서 풀려나 사헌부와 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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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일기 양이 엄청나게 방대하다는데..
어떤 내용을, 얼마나 적은 건가요?
어떤 내용을, 얼마나 적은 건가요?
답변 2)
조선시대 개인 일기로 보자면 가장 방대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1567년부터 77년까지 10년 간의 기록입니다.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당시 정치, 경제, 사회, 풍습에 이르기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했는데요. 친필일기로 14권의 책이 있었는데요. 지금 남아있는 것은 11권이고요. 그 중에 10권은 미암일기 그리고 그 중 1권은 미암과 그의 아내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승정원 일기가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해요. 이런 미암일기가 조선선조실록 첫 10년 간의 기록을 사료가 되면서 보물로 지정이 됐죠.
조선시대 개인 일기로 보자면 가장 방대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1567년부터 77년까지 10년 간의 기록입니다.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당시 정치, 경제, 사회, 풍습에 이르기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했는데요. 친필일기로 14권의 책이 있었는데요. 지금 남아있는 것은 11권이고요. 그 중에 10권은 미암일기 그리고 그 중 1권은 미암과 그의 아내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승정원 일기가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해요. 이런 미암일기가 조선선조실록 첫 10년 간의 기록을 사료가 되면서 보물로 지정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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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하서 김인후' 선생과도
우정이 깊었다고요...
우정이 깊었다고요...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까?
답변 3)
하서와 미암은 기묘사화로 인해서 화순 동복으로 유배온 신재 최산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사이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하서가 성균관에 있을 때 더욱 돈독해졌는데요. 하서가 전염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였는데, 당시 문과에 먼저 급제를 해서 성균관 관원이었던 미암은 하서의 병을 극진하게 돌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는데요. 그런 하서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배 간 미암의 집안과 사돈을 맺게 됩니다. 자네가 멀리 귀향을 가고 처자가 의지할 데 없으니 내가 자네 아들을 사위로 삼겠노라 약속을 하는데요. 그런 그가 사랑하는 당신의 셋째 딸을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하서는 미암과의 우정을 돈독하게 쌓게 됐죠.
하서와 미암은 기묘사화로 인해서 화순 동복으로 유배온 신재 최산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사이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하서가 성균관에 있을 때 더욱 돈독해졌는데요. 하서가 전염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였는데, 당시 문과에 먼저 급제를 해서 성균관 관원이었던 미암은 하서의 병을 극진하게 돌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는데요. 그런 하서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배 간 미암의 집안과 사돈을 맺게 됩니다. 자네가 멀리 귀향을 가고 처자가 의지할 데 없으니 내가 자네 아들을 사위로 삼겠노라 약속을 하는데요. 그런 그가 사랑하는 당신의 셋째 딸을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하서는 미암과의 우정을 돈독하게 쌓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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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부인인 '송덕봉' 선생도
아주 유명한 분이라는데,
아주 유명한 분이라는데,
어떤 분인가요?
답변 4)
덕봉 송종개는 학문이 높은 여류시인으로 조선의 당당한 4대 여류 문인으로 들어갑니다. 담양에서 태어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송준의 딸로 문학에 대한 소질이 집안 내력이라고 해요. 바로 매창월가 라는 조선 전기 대표적 은일가사를 남긴 이인형이 바로 외조부가 되는데요. 이 송덕봉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글에 대한 자질이 아주 뛰어나서 서사와 경서 등을 두루두루 섭렵했다고 합니다.
덕봉 송종개는 학문이 높은 여류시인으로 조선의 당당한 4대 여류 문인으로 들어갑니다. 담양에서 태어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송준의 딸로 문학에 대한 소질이 집안 내력이라고 해요. 바로 매창월가 라는 조선 전기 대표적 은일가사를 남긴 이인형이 바로 외조부가 되는데요. 이 송덕봉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글에 대한 자질이 아주 뛰어나서 서사와 경서 등을 두루두루 섭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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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송덕봉' 선생의 저작 중에는
어떤 내용이 널리 알려져있습니까?
어떤 내용이 널리 알려져있습니까?
답변 5)
덕봉의 시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전부가 전해지지 않아서 좀 안타까운데요. 유배된 남편을 찾아 삼만리 길에서 지은 시가 아주 유명합니다. 미암박물관 앞에 보면 그의 시비가 있는데요.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는 평평한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있구나 부인의 몸으로 만리 길 어이 왔는가 삼종의 도는 무겁고 이 한 몸은 가벼운 것을' 이라고 이렇게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미암박물관이 또 코로나 19로 휴관 중이라고 합니다. 다음 기회에 도란도란 그들의 애틋함이 묻어났던 연계정과 미암박물관을 함께 다녀보면 정말 좋을 것 같죠.
덕봉의 시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전부가 전해지지 않아서 좀 안타까운데요. 유배된 남편을 찾아 삼만리 길에서 지은 시가 아주 유명합니다. 미암박물관 앞에 보면 그의 시비가 있는데요.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는 평평한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있구나 부인의 몸으로 만리 길 어이 왔는가 삼종의 도는 무겁고 이 한 몸은 가벼운 것을' 이라고 이렇게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미암박물관이 또 코로나 19로 휴관 중이라고 합니다. 다음 기회에 도란도란 그들의 애틋함이 묻어났던 연계정과 미암박물관을 함께 다녀보면 정말 좋을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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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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