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내인생의 오일팔24(끝) - 리영희의 오일팔

김철원 기자 입력 2020-12-18 20:20:00 수정 2020-12-18 20:20:00 조회수 0

(앵커)
광주MBC가 올해 1월부터 진행해온
5.18 40주년 연중기획 <내인생의 오일팔>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지막 인물은
타협 없는 진실탐구와 굽힘 없는 글쓰기로
평생을 살아오다 10년 전
5.18묘지에 안장된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입니다.

김철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독재자가 시키는대로, 불러주는대로 보도할 수밖에 없어서 언론자유가 질식해 있던 그 때, 리영희 기자 그리고 리영희 교수가 쓴 글은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모든 언론이 '중공', '북괴'로 표현하던 당시 홀로 중국과 북한으로 용기 있게 표현하면서 한반도 주변국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일깨웠고 미국이 벌인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정면으로 꿰뚫었던 그의 기사와 논문은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을 각성시켰습니다.

(인터뷰)故 리영희 선생 (2005년 광주MBC 특별대담)
"난 다만 모든 억압과 폭력과 거짓에 대한 증오. 본능적인 증오가 있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래서 '사상의 은사'라는 존칭을 얻었지만 군사정권에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한양대 신방과 교수이던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주모자로 몰려 군사반란세력에 또다시 붙들렸습니다.

(인터뷰)故 리영희 선생(2005년 광주MBC 특별대담) "난 광주라는 곳을 1974년에 사회조사하기 위해서 왔다가 몇 사람 만나고 얘기하고 술먹고 돌아간 이후에 와본 일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야. 몇 달 뒤에 석방되고 나올 때까지 광주사태가 난 줄을 모르고 나왔다고요. 광주사태가 주모자인데 말이지."

석방된 뒤에는 광주학살의 미국 책임 문제를 두고 릴리 주한미국대사와 지상논쟁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故 리영희 선생(2005년 광주MBC 특별대담)
"열세가지 항목으로 조목조목 따져서 미국이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 아무리 발뺌을 해도 될 수 없다는 걸 적었어요 "

이런 이유로 평안북도 운산군이 고향인 그는 지난 2010년 별세하기 전 자신이 죽으면 국립 5.18민주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인터뷰)故 리영희 선생(2005년 광주MBC 특별대담) "온갖 모순과 부정의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정치적인 학대와 박해와 이런 것을 한 몸에 져야하게끔 강요당했던 상징의 도시가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난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언제나 아픔의 상처의 뜻을 같이 하면서 어루만지면서 지내왔습니다."

오직 진실을 향한 리영희 선생의 신념과 용기는 아직 진실을 다 밝혀내지 못한 오월 광주를 위해 여전히 필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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