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요즘 컴퓨터나 스마트폰 때문에 펜이나 연필로
글씨를 직접 쓸 기회가 줄고 있죠.
그런데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직접 원고지에
베껴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을 쓰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송정근 기자입니다.
(기자)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8백만부가 넘게 팔린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시작으로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쓴 원고지가 5천 5백장이 쌓였습니다.
독자 노영희씨는 지난해 4월부터 매일 5시간씩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써서 소설 태백산맥 필사를 마쳤습니다.
처음엔 후회가 들었다고 합니다.
(인터뷰)노영희/소설 태백산맥 2015년 1월 필사
"첫 권 쓸 때 목이 많이 아프고 오른쪽 손가락에 마비가 오고 그래서 이걸 꼭 해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권 분량의 태백산맥을 손글씨로 직접 베껴쓴 독자 3명의 원고가 태백산맥 문학관에 기증됐습니다.
(스탠드업)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하려면 2백자 원고지
1만 6천여장 정도가 필요한데요.
이곳에는 지금까지 필사를 완료한
독자 9명의 필사본이 소장돼있습니다.
읽는 것도 만만치 않은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손으로 일일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안정자/소설 태백산맥 2014년 1월 필사
"글을 잘 쓰려고 하면 필사를 하는 게 낫다 이렇게 말해서 태백산맥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키보드나 스마트폰 터치로는 느낄 수 없는
몰입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기호/소설 태백산맥 2014년 9월 필사
"심지어는 쓰다가 새벽에 늦게 잠이 들었을 경우 꿈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스스로 각색을 해가지고 쓰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깨어보니까 다행히 꿈이었습니다."
독자들로부터 필사본을 헌정받은 작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라며
감격해 합니다.
(인터뷰)조정래/소설 태백산맥 작가
"작가가 독자한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독자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인데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긴 소설을 전부 필사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한자 한자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손글씨가
스마트 시대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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