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뉴스

(5.18특집2) 이름 되찾은 무명열사들

우종훈 기자 입력 2022-05-11 20:43:17 수정 2022-05-11 20:43:17 조회수 9

(앵커)

5.18 42주년을 맞아

행방불명자와 무명열사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시간,



이름 없이 유해만 남은 5.18열사의

기록을 완성시키는 일 역시 미완의 숙제입니다.



41년동안 무명열사 묘에 묻혔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유해의 신원이 밝혀졌는데요.



그 과정엔 계엄군의 잔학함과

국가의 성급한 매장이 이뤄진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종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국립 5.18 민주묘지 4-96번 무명열사의 묘.



유해는 땅에 묻혔지만 이름을 찾지 못했던

무명열사 묘의 주인이 41년만인 지난해 밝혀졌습니다.



유해의 주인은

1980년 당시 고1의 나이로 숨진 양창근 열사.



불과 1백여 미터 떨어진 묘역 1-38번 양 열사의 묘에는

양 열사 아닌 다른 유해가 안장돼 있었던 것입니다.



* 송선태 위원장/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지난해 12월)

"양창근의 유가족에게 채취한 혈액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일치됨에 따라 양창근의 유해가 뒤바뀌어 매장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양창근 열사의 유해가 뒤바뀌어 매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양 열사는 5월 19일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위에 합류한 뒤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헤맸지만

아들의 소식이 들린 건 한 달 뒤.



그때 아들은 이미 땅에 묻힌 상태였습니다.



* 박현정 사무관/ 옛 전라남도청 복원추진단

"망월묘지를 다듬어서 시신을 빨리 묻게 해서

나중에 가족들이 찾으러 왔을 때도 이미 땅속에 들어가 있던 상태들이었던 거예요. "



무명열사 묘에 묻힌 진짜 양창근 열사의 유해와

41년 동안 양 열사로 잘못 알았던 유해,



두 유해 모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검시가 이뤄졌습니다.



열흘간의 항쟁이 끝난 뒤

한 데 모인 시신을 묘지로 옮기면서

지문 채취 등 정확한 신원 확인 없이

성급한 매장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 허연식 과장/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이 과정에서 시신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신원을 정확하게 입증할 수 없는 이런 사례들이 이번 케이스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40여년 만에 신원이 밝혀져 이름을 되찾은 무명열사는

양창근을 포함해 모두 두 기.



발굴된 유품을 통해 당시 네 살이었을 걸로 추정되는

무명열사를 포함해

무명열사는 아직 세 명이 남아있습니다.



MBC 뉴스 우종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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