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땅이 전해는 이야기를
화폭에 담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물감 대신
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난해 허백련 미술상을 받은
박문종 화백의 전시를,
박수인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박문종 화가의 그림에선
흙냄새가 전해집니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황톳빛은
물감이 아닌 진짜 흙입니다.
논에 한지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물이 스며들고 흙이 묻어납니다.
그렇게 땅과 교감하는 동안
종이는 누더기처럼 변하지만
땅의 생명력처럼 질긴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 박문종 작가
"제가 시골에 와서 가장 작업을 하는 데
포인트를 둔 것이 뭐냐면,
그냥 풍경은 그리지 않는다는 것하고
반드시 경작지. 사람의 손길이 간 공간."
의재 허백련 선생의 제자들이 세운
연진회 미술원을 1기로 수료한 박문종 작가는
1980년대 암울하고 치열한 상황을 필묵에 담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예술적 동력과 영감을 찾던
박 작가의 눈에 아버지가 못자리를 하려고
쌓아둔 붉은 흙이 운명처럼 들어왔습니다.
* 박문종 작가
"그 흙을 화실에 들였다가 어느날 갑자기 한번 종이에 풀어봤죠.
그 흙이 푹하고 먼지 냄새 같이 올라오는데, 굉장히 흥분됐어요.
야, 이게 뭐냐 하고."
그때부터 흙은 그림의 재료가 되고
소재가 됐습니다.
1997년 담양 수북에 둥지를 튼 뒤로는
농부가 씨를 뿌려 가꾸고 거두듯이
땅에서 그림을 길어올렸습니다.
뿌린 대로 돌려주는 흙처럼
그의 작품은 가식적인 묘사 없이
간결하고 진솔합니다.
의재 허백련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자
자신의 초기 창작 공간이었던 무등산 춘설헌도 작품 속에 담겼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건
보습으로 땅을 가는 것 같다는 박문종 작가의
예술 여정을 탐방할 수 있는 60여 점의 그림이
그의 스승을 기리는 무등산 의재 미술관에서
다음달 25일까지 전시됩니다.
엠비씨뉴스 박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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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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