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에 집중 발생했던 납북귀환어부 사건의 피해자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데요.
당시 여수 초도지역 어민들도 북한에 끌려갔다 돌아온 뒤 국가 기관으로부터 폭행과 고문 피해 등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형철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1968년 5월, 서해 연평도 인근으로 조기잡이를 나갔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던 김봉남 할아버지.
다섯 달 만에 풀려나 여수로 돌아왔지만, 곧바로 수사기관의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 김봉남 / 납북귀환 어부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구덩이를 파 놓고 땅속에 집어넣고 생매장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죽고 싶은 마음이...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조업 중 북한으로 끌려갔던 이길재 할아버지도 풀려난 직후부터 폭행과 협박, 감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10대 소년에게 경찰은 북측에서 어떤 지령을 받았는지 말하라며 물고문까지 했습니다.
* 이길재 / 납북귀환 어부
"하얀 수건으로 눈을 감기고 목욕탕 물 아놓은 곳에 머리를 숙여서 (물고문을) 받다가 정신을 잃었어요."
이렇게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뒤 국가 폭력으로 피해를 입거나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여수 초도지역 어민은 20여 명.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렵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60년 가까이 숨죽여 지내다 다른 납북귀환 어부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이들도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수사나 사건 기록 자체가 제대로 보관돼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정부는 민사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정진아 / 변호사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시거나 고문으로 인해서 정신적 고통을 받아서 자살하신 분들도 꽤 많이 계십니다만, 이런 분들은 재심 절차를 거칠 수가 없습니다. 납북 귀환어부 사건 전체에 대해서 특별히 적용될 수 있는 특별법이 정말 필요하다."
납북귀환 어부와 유족들은 특별법 제정과는 별도로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지역민들의 피해 실태라도 정확하게 파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MBC NEWS 문형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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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 여수시, 여수상공회의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