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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과 언론, 그리고 '알린다는 것'의 위대함

김철원 기자 입력 2025-12-03 13:41:55 수정 2025-12-03 18:30:18 조회수 213

(앵커)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는 또한 언론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45년 전 전두환이 일으킨 내란 때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인데요.

1년 전 그 날은 이른 바 사실을 사실대로 '알린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김철원 보도본부장이 전합니다.

(기자)
비상계엄이 내려진 1년 전 오늘 밤 모든 언론사들은 예외없이 기자들을 비상소집했습니다.

저도 그날 밤 회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 보았던 광주시내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유독 평소보다 한산했던 거리의 풍경은 물론 안개가 자욱히 끼쳐오던 밤거리의 스산한 냄새가 생생합니다.

계엄군이 새벽부터 광주MBC에도 들이닥쳐 5.18 때처럼 보도 검열을 시작할 것이 명확했습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광주MBC의 긴장감은 더욱 컸습니다.

5.18 때 제대로 된 보도를 못해서 시민들에 의해 사옥이 불탔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5.18 때 왜곡보도를 44년만에 시민들에게 공식사과를 해놓은 지 불과 두달도 안된 터였습니다.

* 김낙곤/광주MBC 사장(2024년 10월 8일 광주MBC 창사 60주년 기념사)
"당시 언론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오월 영령과 광주시민,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사과방송을 한 지 두달도 되지 않은 마당에 광주MBC 선배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계엄과 검열을 다시 현실로 마주하게 된 셈입니다.

44년 전 오판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연하게 들었던 계엄이 막상 현실로 닥쳐오자 검열과 보도통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5.18 당시 목숨을 걸고 사실을 취재해 기록으로 남겼던 기자 선배들의 용기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 나경택 (5.18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
"역사는 기록 아니겠습니까. 공수부대 만행사진을 우리가 5월 19일 신문에 못 실으니까 저희 부장한테 이야기해서 여러 사람한테 이야기해서 소문이 나면 저는 끌려가게 돼 있거든요. 그 사진을 AP, UPI 통신 통해 외국에 알렸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취재한 기자들도 있었고 사실을 알릴 수 없다면 제작을 거부하겠다는 언론인들도 많았습니다.

1천명에 가까운 언론인들이 해직이나 투옥 등 자신의 삶으로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자신의 양심을 지켜나갔습니다.

당시는 이들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말처럼 '역사에서의 승리'는 전두환이 아닌 이들 해직언론인들이 거뒀습니다.

* 신연숙 80년해직언론협의회 공동대표(80년 당시 한국일보 기자)
"'진실을 보도해야 된다.''시민들에게 알려야 된다.' 그런 일념으로 저희들이 모여서 농성하고 선언문을 낭독하고 했거든요. 저희들은 지금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전두환은 44년 전 전화 등 모든 통신을 끊고 언론을 동원해 광주를 고립시켰습니다.

광주학살의 진실이 광주 밖으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자 애를 썼습니다.

*1980년 5.18 당시 가두방송
"광주시민 여러분, 여기는 대학생 수습대책위원회 방송반입니다"

지난 45년간 광주항쟁의 본질은 어쩌면 진실을 감추려는 전두환과 진실을 알리려는 광주시민들의 지난한 투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그 부분을 잘 표현했습니다.

* 영화 택시운전사 中
"아유 어 리포터?"
"예스, 아임 어 리포터"
"우리를 찍어줄라고 독일에서 기자님이 오셨구만이라우"

국민의 군대가 자국민에게 총을 쐈다는 충격이 44년 뒤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들의 방아쇠를 머뭇거리게 했듯,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44년 뒤 전 국민들에게 용기를 줬듯,

그리고 불탄 광주MBC와 해직 언론인들이 보여준 '역사에서의 승리'가 후배 언론인들에게 교훈과 귀감이 돼 윤석열의 내란에 맞설 힘을 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광주가 꺼지지 않는 '민주주의의 등대'로서 앞으로도 계속 소환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비상계엄 #언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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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원
김철원 one@kjmbc.co.kr

광주MBC 취재기자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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