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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금] 이름 없이 잠든 78년…신원 확인 2구 뿐

박현주 기자 입력 2026-10-16 16:44:44 수정 2026-10-16 16:52:12 조회수 33

(앵커)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처음 발굴된 지 28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DNA로 신원이 확인된 건 단 2구뿐인데요.

유해 발굴도, DNA 채혈도 더딘 사이 유족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박현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반세기 만에 땅 위로 드러난 5구의 유해.

총탄이 관통한 듯 구멍이 뚫린 두개골부터 뒤엉킨 채 발견된 뼛조각들까지

빨갱이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입 밖에 내지 못했던 학살의 진상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 박종길 / 여순10·19사건위원회 위원(당시 발굴단장)
"암매장 같은 것은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드러난 게 두개골이었어요. 두개골에서 더군다나 선명한 총탄 자국까지 드러나면서…"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유해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기자)
"여수 봉계동과 호명동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이곳 시립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광양 매티재 등 집단 암매장 추정지는 130곳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발굴이 이뤄진 곳은 10곳도 채 되지 않습니다.//

사유지인 경우 소유주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오랜 세월 지형마저 바뀌면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군인들에게 끌려간 아버지를 기다리다 학교 갈 나이가 돼서야 큰아버지의 호적에 오른 딸.

딸의 평생 소원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아 제대로 모시는 겁니다.

* 강순애 / 여순10·19사건 유족
"많이 울었어요. 지금이니까 이렇게 안 울지, 그때는 항시 아버지 엄마 말만 하면… 그 동안에 소원이라도 풀어주려면 부모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유해를 찾는다 해도 가족을 찾기는 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유해 약 60구 가운데 DNA 검사로 가족을 찾은 건 담양에서 발굴된 2구뿐.

2년 전 유족 94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채혈 이후 추가 채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도내 병원 두 곳에서 언제든 방계 8촌까지 채혈할 수 있는 제주 4·3사건과 대조적입니다.

* 장은영 / 여순10·19사건 지원단장
"매년 새로 예산을 따고 용역을 통해서 (업무가) 단편적으로 이뤄지다 보니까 분절적으로 업무가 가서… 이렇게 건건이 하기보다는 사실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계속 새로 유해 발굴될 때마다 또 매칭하고 이런 게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위원회는 올해 말 유족 120명을 대상으로 2차 채혈을 재개할 계획이지만

DNA를 대조할 유해 유전자 데이터는 40구가 전부 입니다.

78년 전 차가운 땅에 묻힌 희생자들은 오늘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MBC 뉴스 박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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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박현주 zoo@ys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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