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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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뙈기에서 느꼈던 행복한 추억들

지금 저는 두 손이 안쥐어질만큼 굳어있어요. 요며칠간 삽질과 호미질을 해서지요. 친구 소유의 땅인데 마침 우리집에서 5분거리도 안되는 곳에 있어서 친구가 함께 가꿔보자는 말에 선뜻 응해버렸다. 그리고는 지금 이렇게 온몸이 아프면서도 마음만은 즐겁고 머리는 맑아 기분좋은 추억 하나를 들춰보려한다.

예전에 살던 집 한켠에 두어평 남짓 밭이 있었다
그 밭에 흙이 까만것이 기름졌다
아침나절이면 햇빛이 고루 비치는 것이 뭐든 심으면 잘될 것 같았다
가까운 시장에서 고추와 가지 모종을 두어판 사다가 옮겨 심었다
그 어린 모종을 심어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했고, 또 집안에 있던 텃밭이라 밥만 먹으면 창밖을 내다 보게 되었다.
밤에도 달빛에 쭈그리고 앉아 그 어린 모종을 보았다

요즘같은 봄이었는데, 어느 한 날 진눈개비가 휘몰아쳤다
어린잎이 진눈개비에 휘둘리는 걸 그냥 볼 수 없어서 줄맞춰서 심었던 고추와 가지모종을 다시 모종삽으로 떠 올렸다
종이박스에 담아 거실한켠에 들여놓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어린 모종은 그 밤을 거실에서 지샜다

간밤의 진눈개비는 거짓말처럼 녹았고
땅은 알맞게 촉촉하고 햇빛도 반짝이는 아침에 다시 모종을 옮겨 심었다
햇빛쪽으로 모종들은 날마다 키를 키워나갔다
너실너실 키가 자라고 우리집은 그 밭으로 인해 녹색으로 채색되어졌다

보랏빛 가지가 주렁주렁 열렸고, 진초록의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열려있는 대문사이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요기도 되었다.
아이들도 그 밭에 관심이 많아졌다
애들 또한 그 정원에 무언가를 심고 싶어했으므로 오이모종을 몇 모둠 더 사다 심었다.
의외로 오이는 잘 자라 정성껏 만들어준 대나무 지주대를 타고 예쁜 가시를 달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어떤 씨앗이건 심으면 다 되는줄 알고 여러가지 씨앗을 심곤했다.
수박먹고 수박씨를 심고, 포도먹고 포도씨를 심었다. 감자에 싹난 것도 심었다
우리는 그 것들의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것을 보았다
애들과 나는 밤중에도 그 한 뙈기 밭가에 앉아 푸른 잎새에 얹힌 달빛을 보았고 그 여린 빛 아래서 지렁이가 한 세상 사는 것도 보았다
어느날 부터 우리 밭에는 흰나비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순간에 초록잎들이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흰나비가 알을 슬어 놓은 것이다
초록색 애벌레가 흰나비의 어린 것인줄 뻔히 알지만
나는 케일의 어린 모종일 때 부터 자원하여 엄마가 되었기로
나무젓가락으로 가차없이 흰나비 애벌레를 그 잎으로 부터 떼내었다
그 초록벌레는 종이컵에 담겨져 동네 꼬맹이들 손에 건네졌다
그 날부터 우리집 마당은 동네 꼬맹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애들이 수시로 들랑거리며 초록벌레를 잡아갔다

너실너실 춤추는 초록빛 밭을 우리는 여름내내 즐겼다
동네 사람들도 기웃거릴 만큼 풍성한 밭이었다
밭에서 따온 고추랑 가지랑 오이를 가지고 신선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이웃들과 어울려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올해도 마침 밭 한뙈기를 얻어 예전과 같은 재미를 느끼게 되어 난
지금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밭 한 뙈기가 우리 애들에게는 책이었다 지구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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