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현의 시선집중

황동현의 시선집중

07시 05분 보이는 라디오

인터뷰 내용보기

[이주의 인물]‘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지역 3.1운동‘ 책 발간의 의미(초당대학교 박해현 교수)

의미 있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
우리 주변의 화제의 주인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주의 인물!’
 
광주 전남지역에서 전개된 항일운동에 대해
일제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최근 광주시와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판결문으로 본 광주 전남 3.1운동’ 을 출간했습니다.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광주 전남 3.1 운동 관련 345명의 재판 판결문을 번역하고
 
호남지역 항일운동의 특징과 인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국역 자료집(일본한자를 우리말로 번역)이라고 하는데요,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우리 지역의 3.1 운동사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한 역사 문화 정립에 앞장서는 분이기도 하지요.
 
‘판결문으로 본 광주 전남 3.1운동’ 발간의 중심에 계시는
초당대학교 박해현 교수, 만나봅니다.
 
/인사/
 
1. 이번에 ‘박해현의 새로 쓰는 마한사’ 책도 발간이 됐던데요. 마한사를 새로 쓰게 된 특별한 이유는?
 
-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기록이나 유물에서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 한국고대사의 원형임에도 백제의 일부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었다.
- 전라도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의도에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기록과 출토 유물이 너무나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보이는 마한인은 용맹하여 굴복하지 않는다. 양보를 잘한다. 금은보다 옥을 사랑한다. 소나 말을 장례에 쓴다는 내용이 문헌이나 유물에서 확인되고 있다. 옥야리 고분군 산지중해를 중심으로 대륙과 해양문화가 융합된 마한문명이 꽃피웠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특질을 분석하다 보면 전라도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된다.
 
2. ‘박해현의 새로 쓰는 마한사’ 가 갖는 의미가 클 것 같은데요?
 
- 본서는 마한을 다룬 최초의 단행본, 교과서라는 점에 의의를 둔다. 그동안 나온 마한 관련 책은 주제별 연구자의 논문을 모아놓은 논문집에 불과하였다.
- 다음으로 백제 중심으로 마한사를 보았던 그동안의 인식에서 벗어나 마한 중심으로 백제사를, 나아가 마한이 한국 고대사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를 둔다.
- 또한 마한을 금강 이남의 마한 남부연맹과 그 이북의 마한 북부연맹으로 나누어 두 세력의 치열한 각축으로 이 시기를 이해하려 하였다.
-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소홀히 다룬 기록까지 꼼꼼히 살피어 영산 지중해를 토대로 마한 르네상스가 꽃피웠음을 밝혔다.
 
3. 이 책의 핵심 내용도 소개해주시죠.
 
-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 가운데 마한에서 변한, 진한이 나오고, 마한왕이 변한, 진한 왕을 하였다. 백제도 마한에서 땅을 얻었다. 곧 한국고대사의 뿌리가 마한이다.
- 문헌에서 마한은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6세기 중엽까지 800년 넘게 확인되고 있다. 기록에 나오는 마한의 특징들이 영산강 유역 마한 유물에서 확인되고 있다. 마한문화의 발상지가 영산강 유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의 뿌리가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4. 기존의 주장과 차이점이 있다면?
 
- 4세기 후반 백제의 영역이 되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다.
- 충청도 지역의 목지국 세력이 백제에 밀려 남하하여 영산강 유역에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다 6세기 중엽 백제에 흡수되었다는 주장
- 그러나 저자는 원래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이 마한의 핵심세력이고 이곳에서 형성된 문화가 마한문화라는 주장. 특히 그동안 미쳐 살피지 않은 장례 풍습과 같은 마한 사회의 특징, ‘매’가 마한의 상징이고 그 상징의 내용이 영산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주장 등 흥미 있는 내용이 많다.
 
5. 연구 과정에서 희열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고요?
 
– 기록과 유물을 통한 새로운 역사 해석
1) 장례풍습 연구 – 소와 말을 장례에만 이용했다는 중국 기록
순장 풍습이 아닐까라는 추정 – 복암리 1호분 온전한 소뼈 유구 확인, 순장대용임
2) 응준(매)이 마한의 상징임을 입증 – 사슴:백제, 매(새):마한
복암리 1호분 응준 명문 녹유탁잔 확인, 응방, 매의 산지 전라도
그동안 응준을 백제의 상징이라 주장
매- 일본말로 구지. 구지가 있는 나라 = 구다라(마한)
일본문화의 원형 – 마한임을 확인,
 
6. 마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왜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7. 마한사 연구가 중요한 까닭은?
 
마한은 한국고대사의 뿌리이다. 그 원형을 이룬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교류와 융합을 통해 800년 넘게 새로운 마한 문화가 꽃피웠다. 백제와 통합된 후에도 마항정체성이 이어졌다. 오늘날 전라도 정신의 뿌리인 셈이다. 일제가 마한사를 애써 무시하며 백제사의 일부로 살폈고, 해방후에도 이러한 식민사관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4세기 후반 백제의 마한 복속설이 유효하다. 마한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자들도 4세기 후반 마한복속설을 인정한 위에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본서 출간을 계기로 그동안 역사에서 사라진 마한사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8. 실은 저희가 ‘판결문으로 본 광주 전남 3.1 운동’ 출간에 맞춰 교수님을 모셨는데요. 마한사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 ‘판결문으로 본 광주 전남 3.1 운동’ 이 자료집이 갖는 의미라면?
 
그동안 광주 전남 3.1운동 규모가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나는 등 일제가 축소 왜곡한 내용을 연구자들이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즉 동학, 한말의병전쟁 때 이 지역의 피해가 커서 시위가 미약한 것이라 평가하고 있었다. 과연 그러한가 하는 것을 깊이 천착하고 싶었다.
 
9. 내용의 흐름도 소개해주시죠.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광주 전남 3.1운동의 특징 및 지역별 전개 상황 살폈다.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판결문을 토대로 한 연구는 더욱 되어 있지 않았다. 판결문을 토대로 당시 신문 자료, 구술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광주 전남 3.1운동의 특징, 지역별 전개 상황을 복원하였다. 그리하여 광주 전남 3.1운동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 축소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결문이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를 지역별, 인물별, 형량별로 정리하여 판결문을 번역하여 일반인이 쉽게 판결문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에 시작하여 2년 가까이 준비하여 102주년이 되는 2월말 출간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연구가 가능하도록 지원하여 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주관하여 준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10. ‘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 3·1운동’ 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동안 3.1운동이 구술에 의존하여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판결문도 한, 두 명의 내용, 또는 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1, 2, 3심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시위의 개별적 양상 내지 전체적인 특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양상, 일제가 적용한 법령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심, 2심, 3심을 함께 살피면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광주 전남 대부분 지역에서 우발적이 아닌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월 5일 장성에서 김범수 등이 인쇄한 2.8독립선언서가 3월 10일 광주에 사용되고 있고, 그 인쇄에 참여한 김태열이 광주 시위에 깊이 개입되고 있는 사실에서 광주 시위가 2월 5일부터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특히 의병 전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진압헌병대와 육탄전을 전개하고(낙안), 헌병분견소를 향해 전진하는(장성 사가리) 등 더욱 강렬한 항쟁의 모습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의병전쟁 때문에 시위가 약화되었다는 종래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11. 일본한자를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 지?
 
12. 집필 과정에서 느꼈던 보람은?
 
3.1운동 100년, 광복 75주년이 지났지만 광주 전남 독립운동가들의 피의 기록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데 대해 후손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100주년이 지난 시점에 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조바심도 이 작업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하였다. 다행히 전남도, 광주광역시 관계자. 특히 도의회, 시의회 의원님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뜻깊은 일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판결문을 찾지 못한 애국지사들이 너무 많다. 예컨대 무안에서도 3.1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나 11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판결문 2명 외에는 없다. 어디엔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 연구자들은 자료에 접근이 어렵다. 후손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원고가 탈고되어 인쇄소에 넘어가기 직전 무안, 신안 3.1운동을 일으킨 김한근 후손이 자료를 찾아와 부친이름이 빠져 있다고 서운해 하였다. 판결문에는 없지만, 지역별 전개상황에 설명되어 있으니 섭섭해하지 마시라고 이야기 할 때 안타까웠다. 국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13. 앞으로 ‘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 3·1운동’ 의 활용방안은?
 
판결문을 토대로 3.1운동사를 다룬 교양서적을 펴내 그들의 빛나는 희생이 역사로 남게 하여야 한다. 본서의 출간에 독립운동가 후손의 기쁨은 대단하고, 일반인, 심지어 연구자도 찾아 2쇄를 찍어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광주광역시에서는 3.1운동 102주년 기념식 때 판결문 전시회도 하였다. 이러한 전시를 교육기관, 공공기관에서 하여 선열들의 값진 피에 보답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14. 마한사와 우리지역의 항일운동에 대해 앞으로도 연구를 멈추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계획도 말씀해주시죠.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