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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촛불정권의 의무_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_20190125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촛불정권의 의무
진도 팽목항의 밤은 깊어가고 파도는 점점 무섭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을 거라는 예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어미아비들은 뜬눈으로 그 밤을 지새웠습니다. 항구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아무 대책도 없는 벼슬아치들이 이른바 의전을 받으며 인사치레로 들락거리고, 별별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뜬구름처럼 몰려다녔습니다. 온갖 신문과 방송사 기자, 마이크, 카메라가 요란스레 경쟁을 벌였지만 엉터리기사와 거짓말투성이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대대적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현장보도가 나가던 시간에 실제로 어떤 구조 활동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만들던 잡지를 팽개치고 진도로 달려갔던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팽목항에서 그 절망적인 현장을 지켜보며 울었습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이토록 무참하게 죽어 가는데 나라가 정부가 우리가 어른인 내가 그냥 쳐다만 보고 있다는 분노와 자괴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실낱같은 기대와 간절한 바람 따위를 품었다는 게 오히려 치욕스럽던 팽목항의 기억은 그러나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은 새로운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에서 분노하고 반성하고 다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돈 보다 사람이 먼저인 안전한 나라의 꿈을 향해 한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도 세월호와 팽목항의 좌절에서 일어나려던 우리들의 몸짓이었습니다.
팽목항은 그냥 슬픔과 설움이 고여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국가 구조시스템은 무너졌지만 섬마을 어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조했던 생생한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는 제 책임을 팽개치고 도망갔지만 제자를 친구를 승객을 구하기 위해 가라앉는 배안으로 다시 들어갔던 진정한 영웅들의 사연이 깃든 곳입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추모객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들의 아픔을 부둥켜안았던 사랑과 연대의 자리입니다.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고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며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춤을 추던 애절한 무대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절망의 자리에서 애틋한 희망의 싹을 피어올린 팽목항이야말로 정부가 앞장서서 기념하고 기리는 아름다운 꽃자리로 만들어야 마땅합니다.
진도 팽목항에 어떤 형태로든 기념시설을 만드는 일은 결코 전라남도와 진도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에게 맡겨둘 일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이른바 적폐 청산을 약속한 촛불정권의 청와대와 정부, 국회의원들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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