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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모든 사람은 귀하다_전라도 닷컴 황풍년 편집장_20180101_20190101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
■ 모든 사람은 귀하다
겨울 추위가 솔찬합니다. 아무리 옷을 여며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저절로 몸이 웅크려집니다. 모질게 추운 날이면 늘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치던 날이었습니다. 무안의 작은 바닷가마을 고샅에서 조개 캐러 가는 할매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함께 마을을 둘러보던 동료기자 둘이 할매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엄니 지금 나가시문 안돼요. 너무 추워서 얼어 죽어요. 세상에 이런 날에 어떻게 일을 한답니까?” 숫제 울먹이다시피 하면서 매달렸지만 “워따 암시랑토 않당깨. 이까짓 것이 뭣이 춥다고”하면서 기어이 뿌리치고 바다로 성큼성큼 들어가셨습니다.
장흥 남포에서 만난 팔순 할매도 그랬습니다. 세찬 바람에 바닷물이 쉴 새 없이 얼굴에 부딪히는, 그야말로 몸서리나게 추운 겨울바다 한복판에서였습니다. 바지선에 웅크리고 앉아 물 빠지기를 기다리던 할매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엄니, 이 추위에 차말로 뭐더로 나오셨어요. 이런 날엔 집에서 쉬셔야지요.” 할매 손을 덥석 붙잡고 읍소하듯 말씀을 드리자 “이잉, 나는 이거배끼 없승깨”라고 하셨습니다.
할매는 평생 한겨울 내내 굴을 캐고 또 포구에 쭈그려 앉아 하염없는 조새질로 굴을 까서 장에 내다팔았답니다. 논밭이 부족했던 갯마을 엄니들은 그렇게 지독한 갯일로 자식들을 멕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낸 겁니다. 이제는 그런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고향의 맛을 알뜰살뜰 챙겨서 보내는 일이 객지의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거밖에 없지만, 그 부족함을 한탄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 부족함을 메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치도록 큰 사랑으로 만든 위대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 내리는 오일장에 좌판을 펴고 앉은 할매들, 언 땅에 삽을 꽂고 말뚝을 박는 농부들, 꼭두새벽 공판장에서 작물들을 쌓아놓고 경매하던 분들, 살을 에는 바닷바람에 맞서 고깃배를 띄우던 어부들도 생각납니다. 전라도 골골샅샅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만난 어르신들을 보면서 비로소 사람이 왜 귀한지, 왜 존엄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해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수많은 어머니와 어머니, 아버지와 아버지, 그 위로 무수한 윗대윗대 어미아비의 희생으로 지금 여기 우리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온몸과 온 맘을 다해 지키고 피워낸 귀한 꽃이 바로 나와 너, 우리, 사람이라는 것을 일 년 내내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함이 훼손되지 않는 사회, 돈과 효율, 성과와 속도보다는 늘 사람의 안전을 앞세우는 2019년이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애청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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