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듣기
광주MBC 라디오칼럼_한가위 미풍양속_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_20810925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
■ 한가위 미풍양속
농어촌 시골마을을 취재하다보면 온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함께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마을들은 인심도 좋고 이웃 사이의 정도 깊어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저절로 따뜻해지고 넉넉해집니다.
집집이 부부가 마주앉거나 홀로 밥상을 차려야하는데 점심 한 끼라도 모여서 오순도순 즐거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마을회관에 걸린 달력에는 식사당번을 맡은 칠순 팔순 어머니들의 택호가 삐뚤빼뚤 적혀있기도 하고, 어느 날엔 누구네 집 잔치라고 빨간 동그라미를 크게 쳐놓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마을 어르신들이 한식구가 된 정겨운 공동체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달력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빈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잉~ 노는 날잉깨. 이집 저집 자석들이 찾아옹깨, 아 새끼덜이랑 묵어야제.” 이무롭고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점심은 길어도 금요일까지구요, 쉬는 날엔 각자의 집에서 해결합니다. 객지에 나간 아들딸 누구든 손주라도 한명 데리고 찾아온 어르신에겐 토요일과 일요일의 끼니끼니는 더없이 행복하겠지요.
“암도 안오문? 글문 혼자 채래묵어야제.” 기다려도 찾아오는 이 없는 집의 어르신들은 이틀 내내 오도카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시고, 끼니도 혼자 차려먹어야 합니다. 고적한 집에서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낼수록 돌아올 월요일 점심이 더욱 간절한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저릿해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명절 연휴가 5일입니다.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고향으로 오고가는 기차와 자동차 행렬이 줄을 잇고, 부모형제를 찾아가는 마음은 설레고 뿌듯합니다. 아마도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함께 드시던 점심은 한가위를 앞두고 며칠 째부터 흐지부지 되었을 겁니다. 오일장으로 종종걸음을 하시며 음식을 만들고 논밭과 과수원에서 제일 여문 곡식과 과실을 장만하느라 하루해가 짧았겠지요. 자식새끼들 맛나게 먹이고 바리바리 싸줄 궁리로 따가운 가을볕 속에서 바지런히 몸을 노대셨을 겁니다.
아무리 세태가 변했다고 해도 가족과 더불어 한해 결실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한가위의 미풍양속은 오래오래 지켜야합니다. 혹시라도 고향 가는 걸 포기한 분들이 계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을회관 달력은 명절 연휴 5일 내내 빈칸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