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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향기가 나는 사람_조선대학교 이동순 자유전공학부 교수_20180910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조선대학교 이동순 자유전공학부 교수
■ 향기가 나는 사람
꽃은 피어날 때 향기를 품어냅니다. 조용히 피어나 언제 피었는지 알 수 없는, 산천의 꽃들은 존재를 향기로 알리지요. 꽃처럼 조용한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납니다. 물은 흐를 때 소리가 나지만 연못이 되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흘러 왔는지 알 수 없는 물줄기도 연못에서 소리 없이 존재를 알리지요. 연못처럼 조용한 사람은 침묵하고 있어도 맑은 소리가 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연못처럼 그렇게 맑은 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 또한 누군가에게 꽃 같은 사람이었을까, 연못 같은 사람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름대로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습니다. 올 여름, 그 무덥던 여름도 가을에게 길을 내주고 시간여행을 떠났듯이 말입니다. 높은 하늘과 상쾌한 바람을 남기고 뒤안길로 물러난 여름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꽃 같은 향기를, 연못 같은 맑은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말입니다.
나름대로의 길
가을엔 나름대로 돌아가게 하라.
곱게 물든 단풍잎 사이로
가을바람 물들며 지나가듯
지상의 모든 것들 돌아가게 하라.
지난 여름엔 유난히도 슬펐어라.
폭우와 태풍이 우리들에게 시련을 안겼어도
저 높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라.
누가 저처럼 영롱한 구슬을 뿌렸는가.
누가 마음들을 모조리 쏟아 펼쳤는가.
우리 모두 돌아가고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만나는 날까지
책장을 넘기거나, 그리운이들에게
편지를 띄우거나
아예 눈을 감고 침묵을 하라.
자연이여, 인간이여, 우리 모두여.
조태일, 「가을엔」전문
유신독재를 「식칼론」으로 거부하고, ‘자연’과 ‘인간’과 ‘우리 모두’를 위해 부단히 애썼던 사람, 시인 조태일의 「가을엔」이라는 시에는 그가 걸었던 맑고 고운 향기가 묻어납니다. 우리도 오늘 나름대로의 길을 떠나야할까 봅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길, 향기로운 사람의 길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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