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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30일/ 김창수/ 할머니의 팥죽집
- 할머니의 팥죽집
며칠 전에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 상가 2층에, 동화작가인 아내가 사용할 6평 자리 집필실을 마련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독립공간을 갖게 된, 환갑이 다 된 아내가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그런데 계약 과정에서 보여준 상가 주인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저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계림시장에서 월세를 내고 팥죽집을 하다가, 60이 넘어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아내가 집필실로 사용할 상가 2층 공간을 사서 팥죽집을 하였답니다. 그러다 할머니는 10년 전에 팥죽집을 그만 두고, 세를 놓았다고 합니다.
그 후 할머니는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몇 번이 바뀌는 10년 동안에 한 번도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를 올린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계림 시장에서 당신이 월세를 내며 장사를 하면서, 월세 내는 날이 너무나 빨리 돌아와 발을 동동거린 기억이 선해서 월세를 전혀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그 마음이 전해져서 제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0년 전 제가 땅을 팔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집에서 먹고 싶은 것 많이 먹고 가고 싶은 곳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편히 쉬라’, 는 의사의 말에 따라 병원에서 나와야 하는 말기 암 환자분들에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할 요량으로, 2006년에 화순군 이서면 무등산 자락에 천 팔백평의 논을 샀습니다. 그런데 지혜학교 설립 자금이 턱도 없이 부족해서 그 땅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샀던 원가 5만원에 그 땅을 팔았습니다.
태초에 땅은 주인이 없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모든 땅은 하느님의 것이라고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50년 마다 그 동안 거래 되었던 모든 땅과 소유물을 원 주인에게로 돌려주는 희년 사상이 있었습니다. 봉건 왕조에서는 왕토사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땅은 왕의 것, 즉 국가의 것이라는 사상이었습니다. 사실상 사회적 소유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사회주의도 땅과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바라봅니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땅과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 조리지 않고 몸 누이고 배를 채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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