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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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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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8일/ 이동순/ 오월을 노래하지 마라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오월은 향기로 옵니다. 아주 옅은 향기에도 오월이 왔음을 직감합니다. 제게 오월은 주먹 불끈 쥔 하얀 주먹밥으로 옵니다. 수많은 혀들의 아우성으로 옵니다. 올해도 아카시아꽃은 또 무심히도 피었습니다. 38년이라는 군요. 38년이요. 우리는 38년이란 숫자 앞에 서 또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은, 오월을 피로 물들인 그는,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의 죄를 묻지도 못하고, 그날의 진실을 밝히지도 못한 채, 암매장, 행방불명, 고문, 성폭행, 집단학살과 마주하며 서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영상으로, 기록으로, 사진으로, 증언으로, 어둠을 뚫고 나온 요즘입니다. 세상에 나올 날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정말 알고 싶고, 알아야하고, 밝혀야 하는, 그날의 진실에는 아직 멀리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자유/우리의 소원은 민주”라고 외치던 그 많은 사람들을 처참하게, 무참하게, 학살했던 그날을 뒤로 하고, 아직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기세등등하게 이 땅을 누비는 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가슴에 솟은 붉은 눈물로, 결연한 의지로, 잘 먹고 잘 사는 그 사람이, 죄 값을 치르는 꼴을 목도할 수 있게, 하나된 목소리로 왜 쏘았는지, 왜 찔렀는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는지(「오월의 노래」)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 그 기쁜 날이 오면, 그때는 우리가 도청 앞 그 광장에서 서서 오월의 그분들과 함께 찬란한 자유와 민주를 목 놓아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의 오월을 노래할 수 없습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 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을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김남주,「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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