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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사회_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_라디오칼럼_20180223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2월 23일 금요일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야만사회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스스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불우한 환경에 맞서다 끝내 좌절하는 아이들의 사연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미용실 보조로 일하던 인문계고등학교 졸업생이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는 해고통보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설렘 속에서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아이였습니다.
병든 부모를 보살피고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하겠다던 아이의 꿋꿋한 의지를 우리 사회는 지켜주지 못한 겁니다.
또 작년 이맘때 모녀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사건도 잊히지 않습니다.
엄마와 딸은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한 뒤였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끔찍하고 참혹한 일입니다.
이런 비극이 노상 반복되지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무능한 시스템과 어찌해볼 수 없는 개인의 무기력함에 허탈할 뿐입니다.
정부나 지자체, 학교나 교육당국은 입시철마다 일어나는 이런 참극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합니다.
대다수 인문계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진로가 대학입시라 할지라도 그 대열에서 비껴 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돌봐야 합니다.
대학을 가지 못한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직장을 가지려고 애를 쓰는 아이가 있다면, 맞춤한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도와주고 긴급한 생계 위험도 해소해주는 제도가 그리 어렵고 예산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닐 겁니다.
대학등록금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민들이 한꺼번에 마련하기 힘든 목돈인 건 분명하지만, 은행이나 대기업이 갖고 있는 천문학적인 돈과 여기저기 허비되는 국민 혈세에 비춰보면 그다지 많은 액수는 아닐 겁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과, 빌려서라도 가르치겠다는 학부모가 있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도무지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는 캄캄 절벽이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세상입니까.
정부든 지자체든 학교든 주민자치센터든 은행이든, 어디 한 군데서는 그 어려움을 기꺼이 해결해주는 사회안전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무리한 요구이고 억지일까요.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필요한 돈, 병든 사람이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이 없어서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야만사회입니다.
어린 새끼들, 늙거나 병들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약한 존재들이 힘센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는 정글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물려받은 아이가 돈 때문에 목숨을 끊는 비극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겹겹의 보호 장치가 있는 곳이라야 문명인이 사는 문명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 황풍년 편집장은 전라도 곳곳의 마을 풍경과 너른 들판, 갯벌에서 땀 흘려 일하는 어르신들을 기록하는 토종잡지, 전라도닷컴의 편집장 겸 발행인입니다. 또한 전국 지역 출판인들의 모임인 한국 지역 출판 문화잡지원 대표로서 해마다 지역 책들의 한 마당, 한국 지역 도서전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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