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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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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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기도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0601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6월 1일 목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21세기의 기도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지난 2009년 전북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의 석탑에서는 금으로 만든 사리봉안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 이야기로 잘 알려진 절터유적입니다. 거기에는 백제 왕비가 그곳에 절을 세웠다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또 탑에 안치한 부처의 사리가 가진 신비로움을 이야기하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이 탑을 일곱 번 돌며 지성을 다하면 그 신비함으로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니라.” 탑을 돌면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었던 백제 사람들의 사리 신앙과 거기에 뿌리를 둔 서원입니다. 서원이란 단순한 기도와는 다릅니다. 신의 은총을 구하면서 나도 무언가를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늘에 올리는 서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독교의 성서나 불교의 경전에서처럼 성스러운 서원과 바램만 있을리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더 좋은 직장을 얻는 것,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많은 바램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 소중한 기원들이지만 우리들의 기도가 모두 그처럼 개인적인 기원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사회 전체를 밝게 만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개인적인 바램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바램과 서원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출퇴근 때마다 지나는 십자 교차로는 늘 혼잡하고 긴장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내가 바쁜 것 못지 않게 저쪽 운전자 역시 바쁜 상황에 있을 것입니다. 길에서 만난 내 이웃의 운전자들에게 오늘 하루동안 세 번 길을 양보해 주겠다는 서원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혼잡한 교통지옥 속에 머무르면서도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매일같이 쌓이는 생활 쓰레기들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나누고 발효시키도록 애쓰면서 우리의 생명을 다시 잇게 해 줄 저 강물들이 녹조와 썩은 냄새를 걷어내고 다시 깨끗해지기를 기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옛날의 사람들처럼 일곱바퀴씩 탑을 돌지 않더라도 갈수록 혼탁해져 가는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올릴 기도와 서원들은 우리 곁 가까이에 있습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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