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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로 만나는 세상_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_라디오칼럼_20170410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4월 10일 월요일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걷기로 만나는 세상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오늘도 저는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도 걸어서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걸어서 출퇴근 한 것은 4년 정도가 됩니다. 걸어 다니기 전에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걸어 다니다 보니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좋은 점이 많습니다.
저는 공부하며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연구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고, 강의실에 서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당연히 혈액순환이 잘 될 리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종아리는 퉁퉁 붓고 터질 듯이 아픈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리에 쥐가 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약간씩 붓는 것 말고는 종아리의 통증도 다리에 쥐가 나는 증상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제가 걸어 다녀서 나타난 신체적인 변화는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걸어 다니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세상, 내 안의 나와 만나는 그 순수한 시간이, 걸어 다니는 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걸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를 생각합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길 위에 있는 셈입니다. 그 시간이 좋아서 걷고 또 걷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해야 할 일과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짓 없이 만나고 함께 하기를 다짐합니다.
그 생각의 끝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쐽니다. 늘 제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습니다. 하늘빛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바람 끝을 잡아도 봅니다. 나뭇가지를 만져도 보고 새소리에 응답도 해봅니다. 소리 없이 피고 지는 꽃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인사도 합니다. 그 안에서 제가 자랍니다. 제 안의 평화가 자랍니다.
사실 저는 운전면허가 없습니다. 운전면허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 아주 놀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가끔 멋지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심으로 멋지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 없이 어떻게 사냐고 지금이라도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을 하라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해댑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없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만나는 세상을, 걸어 다니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피고 있습니다. 그리고 꽃이 필 것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또 바람이 불 것입니다. 하늘이 푸릅니다. 하늘이 푸를 것입니다. 별이 총총 뜹니다. 또 별이 총총 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나와 만나고, 그 꽃들과 인사하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하늘을 쳐다보며, 총총한 별빛과 눈맞춤할 것입니다.
◇ 진행자 - 이동순 교수는 조태일의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는 움직이는 시와 상상력, 광주 전남의 숨은 작가들이 있으며 우리 지역의 문학의 원형을 발굴 복원해 문학적 위상을 널리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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