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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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3일 “혐오는 놀이가 아닙니다” <최유준 전남대학교 호남학과 교수>

 안녕하십니까. 전남대학교 최유준입니다. 지난 6월 말,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씁쓸한 일이 있었지요. 광주제일고와 맞선 배재고 덕아웃에서 광주를 향한 조롱의 구호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오월 광주를 조롱거리로 삼아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밈을 흉내 낸 말들이었습니다. 구호를 외친 학생들에게 그것은 아마 짓궂은 놀이, 응원의 연장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놀이였을까요?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명저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하면서, 놀이야말로 인간 문명의 원천이라고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 경기부터 시 짓기 경연까지 온갖 겨루기를 ‘아곤’이라 부르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대등하게 겨루는 놀이를 통해 개인의 명예와 공동체의 정신을 함께 드높였습니다. 오늘날의 스포츠가 바로 그런 놀이의 정수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하위징아가 당시 유럽에 번지던 반유대주의, 곧 혐오의 광기를 ‘놀이를 상실한 인간들’의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는 점입니다. 혐오는 지나친 놀이가 아니라, 오히려 놀이정신의 상실이라는 것입니다.

 

 혐오는 정당한 비판과도 구분되어야 합니다. 비판은 상대의 행동이나 주장, 그러니까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을 겨냥합니다. 그래서 비판은 아프더라도 상대를 응답할 수 있는 대화의 상대로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반면 혐오는 태어난 곳이나 출신처럼 당사자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비난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겨냥한 말에는 어떤 응답도 불가능하니, 혐오는 대화가 아니라 배제일 뿐입니다. 규칙 안에서 실력을 겨루는 대신 상대의 존재 자체를 겨냥하는 순간, 경기장의 아곤은 무너집니다. 그날의 구호가 놀이도 비판도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후의 경과는 그나마 다행스러웠습니다. 광주일고 교장 선생님은 이번 일을 두고,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조롱이 왜 부적절한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라면서도, 누구나 잘못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격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배재고 학생들은 광주일고를 직접 찾아와 사과했고, 광주일고 학생들은 이를 용서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화해의 과정이 참작되어 출전정지 징계는 재심에서 크게 줄었고, 배재고 선수들은 8월 7일에 개막되는 봉황대기 대회부터 다시 그라운드에 서게 되었습니다.

 

 혐오의 구호로 시작된 이번 일은 사과와 용서라는 성숙한 결말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찾아가 고개를 숙인 아이들과 그 손을 잡아준 아이들은, 규칙 앞의 대등함과 경기 뒤의 악수라는 아곤의 감각을 어쩌면 어른들보다 먼저 회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 여름 야구장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결국, 혐오는 놀이가 아니지만 화해는 가장 훌륭한 놀이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