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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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6일 “어른의 도시는 많은데, 아이의 도시는 어디에 있는가”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저녁이 되면 도시의 불빛이 켜집니다. 식당은 붐비고, 술집과 카페는 활기에 찹니다. 모두 어른들이 먹고, 마시고, 놀고, 소비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뛰고, 이야기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어느 도시든, 그 한복판을 걸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키즈카페, 놀이방, PC방, 학원 등,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모두 돈을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모두 어른들의 돈벌이를 위한 상업 공간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상품이 되었을까요?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휴식과 놀이, 문화생활을 충분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놀이는 보상이 아닙니다. 성적이 좋아야 얻는 특권도 아닙니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져도 안 됩니다. 놀이는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권리와 의무를 자본시장에 맡겨버립니다. 그 결과 놀이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더 안전하고, 더 쾌적하고, 더 좋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놀 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이 됩니다.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습니다. 상업적 수익도 크지 않습니다. 정치는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고, 상업은 늘 수익과 효율성을 따집니다. 그래서 권력과 돈이 있는 어른들의 공간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공간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그나마 있는 학교 공간은 방과 후에 닫히고, 아파트 놀이터는 소음 민원 때문에 위축됩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집안으로, 더 폐쇄된 공간으로 밀려들어 갑니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게임 세상 속으로 빠집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과도하게 안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안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위험을 제거한 공간은 도전도, 모험도, 자율도 역시 사라집니다. 외국의 일부 도시에는 ‘어드벤쳐 놀이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톱과 망치를 들고, 직접 나무를 재단하고 구조물을 만듭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교과서보다 훨씬 더 많고 깊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지나치게 통제함으로써, 아이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의무도 회피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첫째, 도시 설계 단계에서부터 아이들의 놀이 공간 배치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일정 비율을 공공 놀이 공간으로 계획하는 주거 및 상업 시설 단지만 인가를 해주는 것입니다. 둘째, 학교와 공공시설을 더 과감히 개방해야 합니다. 방과 후와 주말에, 운동장과 강당, 공공기관의 시설을 지역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셋째, 놀이를 복지가 아니라 투자로 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어울리는 경험은 정서 안정, 사회성, 창의력을 키웁니다. 

 

 아이가 숨 쉴 수 없는 도시는 결국 그 미래도 숨이 막히게 됩니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웃을 수 있는 곳, 실패해도 괜찮은 곳, 돈 없이도 놀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많아질 때 도시는 비로소 우리 미래 세대를 품는 공간이 됩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 도시의 불빛을 보며, 한 번쯤 이렇게 질문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 도시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도 열려 있는가?” 어른의 도시는 충분히 넘칩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도시를 열어 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