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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2일 “조용한 리더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힘” <김 현 철 죽호학원 이사장>
제가 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회의만 열면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먼저 손을 들고, 강한 어조로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던 동료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늘 그들이 회의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조직을 진짜로 움직이던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말수는 적지만, 회의가 끝난 뒤 조용히 동료들에게 다가가 의견을 묻고, 갈등이 생기면 양쪽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팀을 안정시키고 성과를 꾸준히 만들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조용한 리더’라고 불렀습니다. 앞에 나서서 깃발을 흔드는 리더가 있다면, 조용한 리더는 뒤에서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지시를 크게 외치는 리더가 아니라, 팀원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학교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리더 = 목소리가 크고 잘 나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발표를 잘하는 학생, 반장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에게 “리더십이 있다”는 말을 먼저 건네곤 합니다.
하지만 교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리더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교실 뒤편에 떨어진 쓰레기를 조용히 주워 담는 아이, 친구가 혼자 앉아 있으면 다가가 말없이 옆자리를 지켜주는 아이, 조별 과제를 할 때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며 정리를 도와주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괜찮아?” “도와줄까?”라는 질문으로 주변 친구들의 마음을 붙잡고, 교실의 열기를 한 번 더 낮춰 줍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기준이 아직도 ‘큰 목소리’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는 점입니다. 자기주장을 또렷하게 말하는 능력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만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면, 조용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리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교육은 조용한 아이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씨앗을 발견해줘야 합니다. “왜 이렇게 말이 없니?”라고 다그치기보다, “너는 남의 이야기를 깊이 들을 줄 아는구나”라고 인정해 줄 때 그 아이의 눈빛과 미래 가능성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법인 이사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가진 리더십도 분명히 발휘되고 있다...!” 조용한 학생에게는, 말하기를 강요하기보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주는 교실이 필요합니다. 발표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조용한 친구의 의견을 끌어낼 줄 아는 ‘듣는 리더십’을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야 교실은 건강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의 가치를 키워가고 싶다면, 리더십도 다양해야 합니다. 큰 목소리로 길을 여는 리더가 필요하다면, 조용한 시선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리더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반에서, 복도에서, 운동장 한 켠에서 말없이 친구를 챙기는 바로 그 학생이 앞으로 가정을 지키고, 회사를 이끌고, 지역 사회와 대한민국 공동체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조용한 리더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도 교정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조용한 발자국 소리를 들어봅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리더십을 믿고 있습니다. 조용한 리더십!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힘을 알아보고 키워줄 때 우리 교실도, 우리 학교도, 우리 사회도 더 깊고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