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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6일 “신이 내린 소리 파리넬리, 카스트라토에서 카운터테너까지” <김은혜 광주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여러분, 만약 한 사람의 목소리가 왕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의사도, 성직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수였습니다.
18세기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왕을 치료하기 위해 선택한 해결책은 의사도 명의도 아니었습니다.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데려오라.” 매일 밤, 같은 노래·같은 아리아·같은 목소리, 한 남자의 목소리가 왕의 정신을 붙잡아 줍니다. 그 목소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렸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잠시 빌려준 소리.” 그 남자가 바로 파리넬리였습니다.
파리넬리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카스트라토’였습니다. 카스트라토란, 어린 시절 변성기가 오기 전 거세를 당해 성인이 되어서도 소년의 음역을 유지하게 만든 존재, 한마디로 인간이 만든 목소립니다. 그 시대 오페라 무대는 스타를 원했고, 귀족들은 천사의 목소리를 원했으며, 시장은 돈이 되는 상품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목소리’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넬리는 그 잔혹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결과물이었죠. 성인의 폐와 근육을 가진 몸에서, 소년의 높은 음역이 터져 나오는 소리, 그건 시대의 욕망이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카스트라토는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한 음을 1분 이상 끌었다.” “관객들이 기절했다.” “왕이 울었다.” 이런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사람들은 계속 상상합니다. “도대체 어떤 소리였을까?”
그리고 그때 등장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카운터테너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의 현대판인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카운터테너는 거세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훈련된 가성, 팔세토 발성으로 높은 음역을 만들어냅니다.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를 재현한 존재”가 아니라, 카스트라토를 대신하기 위해 탄생한 해답입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우리가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 사실은 노래를 듣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파리넬리도 이랬겠지…” 즉, 카운터테너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사라진 시대를 복원하는 배우가 되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영화. 파리넬리는 그 시절 사라진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카운터테너의 목소리와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섞어 디지털로 합성합니다. 18세기에 존재했던 목소리를 20세기에 기술로 만들어낸 거죠. 카운터테너는 파리넬리를 복원하지도 재현하지도 않습니다. 파리넬리는 한때 왕을 살린 목소리였고, 카운터테너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라진 시대를 다시 꿈꾸게 만드는 목소립니다. 결국 우리가 듣는 건,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파리넬리의 예술적 열망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카운터테너로 되살아났듯이. 우리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