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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비무장지대 지뢰사고가 되묻는 국가의 약속” <이태민 정형외과 전문의>
지난 9월, 비무장지대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다쳤습니다. 사고의 원인과 작전의 적절성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이어지고있습니다. 반드시 밝혀야 할 문제들입니다. 다만 그 소식을 들으며, 저는 다친 장병들과, 그 가족들이 보내고 있을 시간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군복무를 군의관으로 했었기 때문에, 군인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임무를 마친 뒤 돌아가려 했던 그 사람의 일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다치기 전의 삶이나 앞으로의 꿈까지 모두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공부를 이어가려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직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고는 작전 중에 일어났지만, 그 영향은 한 사람의 남은 생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래 전 떠나보낸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저와 같은 부대에서 생활했던, 아주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 군의관 고 조주용입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던 중 심장마비로 순직했습니다. 누군가를 치료하던 의사가, 정작 자신의 삶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세상에는 군의관 한 명의 순직으로 기록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친구의 이름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순직이라는 두 글자로 부를 때, 그 안에 담긴 삶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에게도 군복을 벗은 뒤 이어갈 삶이 있었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군의관으로서 기억하게 되는 또 다른 사고도 있습니다. 2008년 2월, 응급환자를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한 뒤 복귀하던 헬기가, 용문산에 추락했습니다. 군의관 정재훈 소령과 간호장교, 의무병, 조종사 등 일곱 명이 순직했습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임무는 마쳤지만, 정작 그 일을 해낸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희생을 기억하는 일이, 고인의 이름을 부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가족의 생활은 계속됩니다. 다친 장병 역시 병원을 나선 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뒤에도, 그분들의 시간은 이어집니다.
정형외과 의사에게 퇴원은 회복 과정의 한 단계입니다. 수술 부위가 아물었다고 해서, 다치기 전의 일상이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재활을 이어가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달라진 몸에 맞춰 생활을 꾸리는 데에는 오랜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약속은 그 시간까지 닿아야 합니다. 필요한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지, 돌봄을 맡은 가족은 지쳐 있지 않은지, 생계를 이어가고 미래를 준비할 길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가족에게도,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그 책임이 가벼워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시작은 지금 복무하는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어야 합니다. 임무에 따르는 위험을 줄이고, 사고가 나면 원인과 책임을 정직하게 밝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바꾸는 것. 그것이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가장 책임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저는 제 친구 고 조주용 대위를 기억합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헬기에 올랐다가 돌아오지 못한 군 의료진과 장병들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 이름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라를 지켜달라는 부탁에는 그 사람과 가족의 삶을 끝까지 살피겠다는 약속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