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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9일 “도시를 줄이는 용기, 그리고 새로움의 시작”” <이민석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오늘은 조금 낯설지만 앞으로 더 자주 듣게 될 단어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도시 축소화’입니다. 우린 도시를 떠올릴 때 보통 성장과 확장을 생각합니다. 인구가 늘고, 건물은 높아지고, 도로는 넓어지고,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는 모습이죠.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곳곳에서, 특히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줄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면서 남는 건 비어 있는 집과 텅 빈 부지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골목이, 이제는 바람 소리만 들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건물은 낡아가고, 상점은 문을 닫고, 빈 땅에는 잡초가 무성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하죠. “다시 개발해서 채워야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작정 건물을 세우면, 몇 년 뒤 또다시 비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유지비와 관리비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도시 축소화’입니다. 도시의 크기와 기능을 현실에 맞게 줄이고, 비어 있는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실제로 적용해 보기 위해 전라남도 군 단위의 작은 마을을 살펴보았습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마을을 걸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빈 땅’입니다. 원래는 집이 있거나 상점이 있던 자리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지가 많습니다. 또, 법적으로는 상업지역이나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제 생활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걸어서 5분 안에 필요한 가게가 하나도 없는 주거지역, 조망을 가리는 고층아파트와 상업건물, 보행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좁은 인도 등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지방소멸 시대를 맞아, 도시 축소화에 대한 저만의 해법을 고민해봤습니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주거지역을 세분화해야 합니다. 단독형, 타운형, 공동형, 생활형으로 나눠 각기 다른 건폐율과 용적률을 적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무분별한 고층 아파트 대신, 실제 거주 패턴에 맞는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 상업지역도 문화형, 업무형, 생활형으로 나눕니다. 문화형 상업지역에는 갤러리, 공연장, 북카페 같은 공간이 들어서고, 업무형에는 소규모 사무실과 창업 공간, 생활형에는 주민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이 자리 잡도록 합니다. 그리고 높이 제한을 두어 바다와 하늘을 가리지 않게 합니다.
셋째, 녹지와 공원을 적극적으로 늘립니다. 공원 녹지, 완충 녹지, 연결 녹지로 세분화해 각각의 기능을 분명히 합니다. 예를 들어, 완충 녹지는 도로 소음을 막고, 연결 녹지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책로 역할을 합니다. 넷째, 공업지역은 무작정 넓히는 대신, 지역 특화산업과 연결합니다. 이 마을의 특징인(고흥의 경우) 농수산 가공업이나 해양레저 산업 같은 분야에 맞춰 용도지역을 새롭게 정의하는 거죠.
이런 변화는 단순한 도시 디자인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축소화로 확보된 땅은 주민 쉼터가 될 수도 있고, 미래의 청년창업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비어 있던 창고가 공방과 카페로 변신하고, 버려진 공지가 마을 공동텃밭이 되는 모습. 바로 이런 변화가 도시를 다시 숨 쉬게 만듭니다.
도시를 줄인다는 건 절대적으로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들로 채우는 ‘재설계’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크기를 줄이는 결정은 정치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계획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줄이는 만큼 도시의 밀도와 품질은 높아집니다. 이런 작은 마을의 경우 새로운 도시로의 시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적 시도는 전라남도의 다른 마을 더 나아가 전국의 지방 소도시로 확산된다면, 우리는 ‘축소’를 통해 오히려 더 큰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도시는 반드시 커져야 한다는 생각,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작은 도시가 더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우리가 살고 있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에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입니다. 도시 축소화, 그것은 줄이는 용기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